"교통과 건설에 이어 이제는 제조업까지…."
일본의 안전 신화가 빠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18일 오후 연 매출이 2조 원에 이르는 세계적 가스기기업체 파로마그룹의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시 본사.
고바야시 히로아키(小林弘明) 사장 등 경영진이 TV카메라 앞에서 20초 동안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사죄로 말문을 연 고바야시 사장은 1985년부터 지난해까지 파로마공업의 가스온수기와 관련된 일산화탄소 중독사건으로 모두 20명이 숨졌다고 발표해 일본인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파로마는 불완전연소 방지장치를 개발하는 등 이른바 안전신화를 발판으로 고속성장을 거듭해온 기업. 회사 측은 '28년간 불완전연소 사고 제로'라는 선전까지 해왔다.
일본인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파로마 경영진이 보여준 '안전 불감증'이다.
파로마 제품의 안전성문제는 경제산업성이 14일 "이 회사의 가스온수기와 관련된 일산화탄소 중독사고로 1985년 이후 15명이 숨졌다"고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이 때까지만 해도 고바야시 사장은 "제품의 안전성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불량 개조가 사고원인"이라고 잘라 말했다. 기자회견 내내 사과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내 조사결과 사망자가 더 있고 불량개조 외에도 제품 노후화로 인한 사고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자 4일 만에 "정보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며 사죄하기에 이른 것이다.
일본의 안전신화 붕괴는 지난해 4월 효고(兵庫)현에서 열차가 탈선해 107명이 숨진 사고를 시작으로 건설과 제조업 부문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설계사 등이 건축비를 줄이기 위해 철근 사용량을 내진(耐震)규정보다 적게 설계한 사건이 적발돼 그 파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월 말 현재 내진설계 위조사실이 밝혀진 건축물은 아파트 59동, 호텔 38동, 단독주택 3채로 분포지역도 전국에 걸쳐 있어 붕괴공포가 일본 열도를 휩싸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2월 국토교통성이 일본 국민 12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8%가 "일본이 예전보다 위험해졌다"고 응답했다.
도쿄=천광암특파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