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국회에서 열렸던 김병준 교육부총리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는 교육문제 말고도 그의 ‘희한한 병적(兵籍)기록부’가 도마에 올랐다. 국회 속기록에 남은 이날의 장면을 옮겨보자.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이 포문을 열었다. 그는 김 씨의 병적기록부 사본을 내보이며 학력(學歷)이 학교 이름도 없이 중졸(中卒)로 기록된 점, 신체등급 3급 판정을 받고도 현역이 아닌 방위병으로 복무한 점, 키 몸무게 등 신체검사 기록이 없는 점 등을 따졌다. 원본 대신에 재(再)작성된 병적기록부 양식이 당시 사용되던 것이 아닌 점, 다시 작성한 근거가 기록되지 않은 점 등도 거론했다.
이에 김 씨는 “나로서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다”며 “어릴 적에 손가락 2개를 잃었는데 그것 때문에 방위병으로 복무하게 된 것으로 지금껏 알고 있다”고 답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당사자인 김 씨보다 더 열심히 ‘방어전(防禦戰)’을 폈다.
유기홍 의원은 원본이 훼손되거나 분실돼 다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며 “병무청에 문의해 본 결과 당시에는 그런 사례가 많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고 3급이 아닌, 2급을 받은 사람 중에도 보충역으로 간 사례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봉주 의원은 “이제까지 병역비리라는 것을 보면 군사권위주의 시절에 권력층 자제들이 할 수 있었던 특권 아니냐”며 김 씨를 향해 “그때 권력층이었느냐”고 물었다. 쟁점을 비켜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논지(論旨)에서 이탈하는 화술이 여당 386답다. 정 의원은 또 “과거에는 기록을 잃는 사례가 좀 있었지만 참여정부에서는 기록 누수 사례가 없도록 만전을 기하면 되지 않느냐”고 ‘미래지향적’으로 말했다.
이날 여당 의원들의 언행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민주당 후보 측과 친노(親盧) 매체들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장남 병역문제를 병풍(兵風)으로 확산시킬 때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해 5월 오마이뉴스는 전 의무부사관 김대업 씨의 말을 인용해 이 후보 장남의 병역비리 의혹을 띄우고, 이어 7월 김대업 씨가 기자회견을 통해 직접 의혹을 제기했다. 그때 노 후보 측은 “병적기록부가 의문투성이다”며 대필, 바꿔치기, 변조 의혹을 집중적이고 반복적으로 제기했다. 누군가는 김 씨를 ‘의인(義人)’이라고 치켜세웠다.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의혹은) 근거 없다”고 최종 판결해 이회창 씨와 한나라당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누명을 벗었지만 정치적 타격은 회복 불능이었다. 이 ‘병풍 의혹’ 때문에 선거전 와중의 이 후보 지지율이 11.8%포인트나 떨어질 정도였다.
그제 인사청문회에서 주호영 의원은 “노 대통령은 상대 후보 자식의 병역기피 의혹을 부각시켜 많은 표를 얻었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이 정부나 정권은 병역문제에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엄격성을 가지고 따져야 하지 않느냐”고 일침을 놓았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역겨운 이중잣대다. 안민석 의원은 한술 더 떠서 “청문회를 보면서 ‘김 내정자가 이렇게 개인적으로 흠이 없는 분이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고 딴전을 피웠다.
이런 여당의 수석당원인 노 대통령은 “도덕성이 정권 존립의 근거”라고 말한 바 있다. 어떻게 해서라도 김 씨를 교육부총리로 앉히려는 요즘의 노 정권도 ‘도덕성’에 근거해 존립하는 걸까.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