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에 상장(上場)된 정보통신부품 제조업체 ‘세인’은 올해 들어 이달까지 다섯 번이나 대표이사를 바꿨다. 3월 한 달 동안에만도 ‘회사 사령탑’이 세 차례 교체됐다.
이 회사는 지난해에도 6번이나 대표이사를 바꿨다. 19개월 동안 무려 11번이나 최고경영자(CEO)를 바꾼 것. 이쯤 되면 “사장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하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세인은 유난히 심한 경우지만 다른 코스닥 기업들도 CEO 교체가 잦다. 작년부터 이달 14일까지 국내 코스닥 기업들은 대표이사를 총 604회나 바꿨다. 하루에 평균 한 명 이상이 교체된 셈이다.
LG경제연구원 배수한 연구원은 “상장회사가 이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은 물론 외국인투자가들도 한국 기업과 금융시장을 불신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 코스닥 CEO는 일용직?
세인 외에도 거의 ‘습관적으로’ CEO를 바꾸는 회사가 적지 않다.
시스템통합(SI) 업체인 서원아이앤비는 지난해 4번, 올해 3번 등 모두 7번 대표이사를 교체했다. 올해 초 영화배우 배용준 씨가 최대주주가 된 키이스트는 지난해 3번, 올해 2번 등 모두 5번 사령탑을 바꿨다.
반도체부품 업체였다가 엔터테인먼트 업체로 변신한 에임하이글로벌은 올해 3월 10일, 14일, 17일 등 불과 8일 동안 대표이사를 세 번 교체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올해 들어 더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기업이 공시한 대표이사 교체 건수는 올해 들어 19일까지 모두 250건. 지난해 같은 기간 213건에 비하면 37건(17.3%) 늘어났다.
○ 눈앞 이익 급급해 장기 비전 소홀
이런 현상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장기 비전을 세우는 것을 소홀히 한 일부 코스닥 기업의 행태 탓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이렇다.
하는 일이 잘 안 된다 싶으면 시도 때도 없이 주력 업종을 바꾼다. 골프 의류를 만들다가 연예인 두세 명 영입해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변신하는가 하면 통신장비를 만들다 1억 원 정도 출자해 바이오 기업으로 돌변한다. 이 과정에서 수시로 CEO도 바꾼다.
작년부터 다섯 차례나 대표이사를 바꾼 네오시안은 올해 아예 회사 이름도 두 번이나 변경했다.
기존 주주들이 기업의 이런 편법 변신을 대충 눈감아 준다는 점도 문제다.
대표이사를 교체하면서 기업이 포장을 슬쩍 바꾸면 회사 주가가 투기꾼들에 의해 단기 급등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오르는 주가가 오래 버틸 리 없다. 주가는 곧 폭락하기 일쑤고, 멋모르고 따라 투자한 ‘개미’들만 큰 손해를 보는 일이 많다.
○ 투기꾼 몰려 ‘개미’들만 손해
실제로 세인은 실적이 좋지 않아 올해 3월 주식 매매가 정지됐고, 세 차례 대표이사를 바꾼 대한바이오는 4월 증시에서 퇴출됐다.
증시전문가들은 제도와 투자 문화를 모두 바꾸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현재 동양종합금융증권 연구원은 “퇴출돼야 할 기업을 살려 놓으니 대표이사 교체 등으로 연명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자격 미달 기업은 과감히 퇴출시켜야 기업과 증시에 대한 불신을 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홍정훈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투자자들이 호응하지 않으면 기업도 대표이사 교체 같은 꼼수를 쓰지 못할 것”이라며 “기업의 근본을 보고 투자하는 정석(定石) 투자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