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구호 언제까지…19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 앞에서 노조원들이 파업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달 26일부터 계속된 현대차 노조의 파업으로 이날 현재 생산차질액은 1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울산=연합뉴스
《19일 오후 1시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3공장. 주문이 1만3000대나 밀려 있는 신형 아반떼의 작업 라인이 텅 비었다. 반쯤 조립된 차량들만 썰렁한 조립 라인을 지키고 있었다. 노조원들은 이날 오전 8시부터 2시간만 작업을 한 뒤 파업에 들어갔다. 현대차는 지난달 26일부터 시작된 파업으로 벌써 1조 원 이상의 매출 손실을 봤으며 20일부터는 수출도 중단된다. 올해로 설립 20년째인 현대차 노조는 1994년을 제외하고 무려 19년이나 파업을 했다.》
같은 시간 현대차에서 8km 떨어진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지금은 노사 협상기간이지만 작업장 곳곳에서 쇠망치 소리가 들리고 용접 불꽃이 튀는 등 활기찬 분위기였다.
노조 간부 100여 명만 오전 7시부터 1시간 동안 회사 정문 앞에서 ‘정당한 노동성과 투쟁으로 쟁취하자’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시위를 벌였을 뿐이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11년간 무파업 행진은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두 회사 조합원의 평균 임금은 연간 5000만 원대 중반으로 비슷하다.
○ 현대중공업 노사 관계의 변화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는 한국 노동운동의 ‘메카’로 불린다. 올해로 똑같이 노조 설립 20년째를 맞지만 지금의 노사관계는 ‘하늘과 땅’ 차이를 보인다. 현대차 노조는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귀족노조’라는 지탄까지 받는 반면 현대중공업 노조는 회사 측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상생(相生)’의 노사관계를 대표한다.
현대중공업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87년 노조설립 첫해에 노조 간부 30명이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 1994년까지 △회사 측의 노조원 테러 의혹 △두 차례의 대규모 경찰 투입 △직장폐쇄 △‘골리앗 크레인’ 농성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노사분규가 발생했다.
특히 1994년 63일에 걸친 파업의 후유증은 조합원들에게도 큰 피해를 줘 1995년 시작된 무파업의 계기가 됐다.
현대중공업은 당시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며 파업 기간에 대해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1994년 조합원들은 1인당 평균 임금 200여만 원을 끝내 받지 못했다. 이때 노조원 부인들이 “빨리 회사에 가서 일하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로 인해 1995년 일부 노조 대의원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무파업 서명운동이 벌어져 조선사업부문 조합원 9400여 명 중 절반이 넘는 5000여 명이 서명을 하면서 무파업 행진이 시작됐다.
회사 측도 같은 해 격려금 100%를 포함해 모두 310%의 추가상여금을 보장하는 등 파격적인 임금인상안을 제시하며 이에 화답했다. 중도해고 없이 정년을 보장하는 것도 노조의 변신에 영향을 미쳤다.○ 현대차, 일관성 잃어 사태 악화
반면 현대차 노사관계는 개선되지 않았다. 노조의 파업은 연례행사가 됐다.
현대차 노조원 B 씨는 “노조에 대한 사회적인 비난이 있는 것을 알지만 해외공장 증설 등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회사야 어찌됐든 받아낼 수 있을 때 많이 받고 보자는 분위기인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회사 측의 임기응변적인 대응은 사태를 악화시켰다.
표면적으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한다고는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성과급 지급으로 손실을 보전해 주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파업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게다가 ‘생산중단은 절대 안 된다’는 경영진의 지시로 협상 과정에서 너무 많이 양보한 것도 자충수로 꼽힌다.
현대차는 2000년 이후 단체협상에서 인력 배치 전환이나 해외공장 건설 문제를 노조와 협의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1997년 미지급된 성과급 150%를 2002년 지급하기도 했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현대차 파업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사측의 일관성 없는 행동과 실직(失職)에 대한 공포”라며 “파업을 하면 으레 사측이 양보를 하는 관행을 만들어 노조가 강성이 되도록 부추긴 측면도 강하다”고 말했다.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파업에 밀려 3년만에 또 ‘대형사고’
한국의 간판 자동차업체인 현대자동차가 노조 파업의 후유증으로 20일부터 수출 중단이란 ‘극약처방’을 택했다. 2003년 7월에도 하루 수출이 중단된 적은 있지만 이번에는 그 파장이 더 심각할 전망이다.
또 기아자동차, GM대우자동차, 쌍용자동차도 파업 몸살을 앓고 있어 자칫하면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국제 자동차업계의 무한경쟁에서 결정적으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현재 GM, 르노·닛산, 도요타, 포드 등 세계 주요 자동차 회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합종연횡의 제휴를 하고 있다. 여기에다 중국 난징(南京)자동차도 미국 오클라호마에 현지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 파업과 이에 따른 수출중단이 장기화되면 해외 바이어와 고객들의 신뢰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대차 파업사태는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는 일단 23일까지 선적을 중단하기로 했지만 24일 이후 선적이 재개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다른 자동차 회사들도 파업으로 조만간 수출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쌍용차는 14일부터 진행된 파업으로 이미 1700여 대의 생산차질을 빚었다. 매달 5000여 대의 차량을 수출용으로 선적하는 이 회사는 파업이 길어지면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수출에도 주름살이 갈 전망이다.
GM대우 역시 14일부터 야간조를 중심으로 하루에 4시간씩 부분파업에 들어가 2200대의 생산차질을 빚었다. 기아차도 18일부터 3개 공장이 하루에 2시간씩 돌아가며 부분파업을 벌여 642대를 생산하지 못해 98억 원의 손실을 봤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