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을 주도한 히로히토(裕仁, 연호 쇼와·昭和) 일본 국왕이 A급 전범 합사(合祀)를 불쾌하게 생각해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중단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메모가 발견됐다.
히로히토 일왕은 군국주의 세력의 신격화 작업으로 1946년 이전까지 일본 국민들에게 신으로 추앙받던 인물.
일본 정계에서는 메모 발견을 계기로 야스쿠니 신사를 둘러싼 논란이 더 거세지고 있다.
히로히토 일왕은 패전 후 8차례에 걸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으나 A급 전범이 합사된 1978년 이후에는 한번도 참배하지 않았다.
메모는 히로히토 일왕이 숨지기 직전 해인 1988년 4월 28일 측근인 도미다 아사히코(富田朝彦·2003년 사망) 당시 궁내청 장관이 작성했다.
메모에는 히로히토 일왕의 발언이라며 "마쓰다이라는 평화를 중하게 여겼다고 생각하는데 아들은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 참배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 마음이다"고 적혀 있다.
'마쓰다이라'는 패전 직후 궁내대신을 지낸 마쓰다이라 요시타미(松平慶民), '아들'은 합사 당시 야스쿠니신사 궁사(신사의 최고책임자)였던 마쓰다이라 나가요시(松平永芳)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히로히토 일왕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중단 배경에 대해 A급 전범 합사라는 추측 외에도 '미키 다케오(三木武夫·1974∼1976년 재임) 총리의 참배가 정치 문제화하는 바람에 자숙했다'는 견해도 있었다.
'쇼와천황(히로히토 일왕)독백록' 출판에 간여한 작가 한도 가즈토시(半藤一利) 씨는 "나쁜 말을 입에 담지 않는 쇼와천황이 강한 어조로 A급 전범 합사에 반대의사를 나타냈다는 데 놀랐다"면서 "(참배 중단이) 합사와 관계없다고 주장해온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일 것"이라고 말했다.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전 자민당 간사장은 "분사(分祀)론이 힘을 얻을 것"이라며 "야스쿠니 신사가 자발적으로 분사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주장했다.
또 제1 야당인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간사장은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할 국립추도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비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은 "(A급 전범 합사는) 야스쿠니 신사가 판단한 일이어서 정부가 논평할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도쿄=천광암특파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