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를 가한 종이가 떨리는 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종이로봇을 개발한 인하대 김재환 교수.
교편을 잡기 전 한때 복사기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3년 전 어느 날 그 시절 기억을 떠올리다 문득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종이에 전기를 가하면 어떻게 될까?”
학교에 출근하자마자 은박지를 잘라 포개서 풀로 붙이고 전기를 가해 봤다. 이게 웬일인가. 은박지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떨림은 풀이 마르자 그쳤다. 풀에 의해 떨림이 생긴 줄 알고 녹말풀, 문구용 풀, 목재용 풀 등 각종 풀로 실험해 봤지만 별 차이가 없었다.
왜 이런 떨림이 발생했는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화학공학과나 제지학과의 여러 전문가들을 찾아가 물어봤지만 명쾌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다른 종류의 종이에도 전기를 가해 보기 시작했다. 껌 종이, 담뱃갑 종이, 복사용지, 한지, 특수 포장에 쓰이는 크라프트지, 심지어 지폐에 이르기까지 종이란 종이는 모두 동원했다.
그 중 떨림이 가장 잘 발생한 것은 지폐. 흥미롭게도 1000원권보다 1만 원권이 더 많이 떨렸다. 사실 여기에 종이의 떨림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가 있었다.
지폐는 가볍지만 잘 찢어지지 않는 고급 목화섬유종이로 만든다. 이 종이에는 나무나 해초 같은 식물의 줄기에서 얻는 셀룰로오스 성분이 들어 있다. 금액이 클수록 셀룰로오스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 더 질기다.
우리 연구팀은 종이에 전기를 가하면 셀룰로오스 내부에서 전기를 진동으로 바꿔주는 ‘압전효과’가 나타나 떨림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셀룰로오스 함량이 많은 비싼 종이일수록 잘 떨린다. 셀룰로오스 함량이 적은 은박지가 떨리는 이유는 풀에 들어 있는 화학성분과 수분에 전기가 전달됐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아냈다.
이처럼 종이는 전기를 가하면 스스로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 우리 연구팀은 이를 응용해 ‘종이로봇’을 만든다. 종이에 얇은 안테나와 작은 전기회로를 붙인다. 전파를 쏘면 종이로봇의 안테나가 이를 수신해 전기회로로 전력을 생산해낸다. 종이로봇은 이 전력을 이용해 스스로 날거나 기어다닐 수 있다.
종이로봇은 싼 값으로 대량제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실패나 위험이 뒤따르는 우주실험이나 군사실험에 적합하다. 작고 가벼워 초정밀 탐지로봇, 정찰로봇으로도 쓰일 수 있다.
요즘은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새롭고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할 것을 권한다. 엉뚱한 생각이 학생들을 새로운 경험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환·인하대 기계공학부 교수, 생체모방종이작동기연구단장
jaehwan@in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