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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재무부가 움직이면 ‘큰일’ 있었다…레비 차관, 방한 눈길

입력 | 2006-07-21 03:00:00

스튜어트 레비 미국 재무차관

16∼18일 방한한 스튜어트 레비 미국 재무차관이 외교통상부, 재정경제부 등을 방문해 논의한 내용이 미국 재무부 웹사이트 최신뉴스에서 4번째로 올랐다(위). 웹사이트에는 그가 한국을 떠나면서 발표한 성명 내용도 올라 있다(아래). 미국 재무부 웹사이트


《스튜어트 레비 미국 재무차관은 왜 한국을 방문했을까? 레비 차관이 2박 3일간 비공개로 한국을 찾았다가 18일 한국을 떠난 것으로 뒤늦게 밝혀지면서 그의 방한 목적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그가 테러 방지를 위한 금융 분야 협력을 위해 한국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 등 아시아 4개국을 연쇄 방문하면서 한국에 들렀다며 ‘통상적인 방문’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 정부에 그의 방한 일정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도록 요청한 점과 19일 미국 의회에서 탈북자 증언이 이뤄진 점, 레비 차관이 방한 후 미 재무부 홈페이지에 “한국과 미사일 문제 등을 논의했다”는 성명을 자진해서 올린 점 등을 비춰 볼 때 예사롭지 않다.

미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레비 차관의 방한을 통해, 독자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려는 한국의 움직임에 경계와 견제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 미 재무부 고위 관료가 ‘그냥’ 온 적 없다

미국의 재무부 라인은 군사 및 외교 라인과 더불어 미국의 외교 전략을 구현하는 데 중요한 정책 수단이다.

실제로 그동안 미 재무부 고위 관료의 방한이 이유 없이 이뤄진 적은 없었다. 한국에 올 때마다 정치 경제적으로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미쳤고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1993년 11월 초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막판 진통을 겪고 있을 때 제프리 셰이퍼 미 재무차관보가 방한해 한 달 뒤인 12월 15일 UR 협상 타결을 이끌어 냈다.

1997년 11월과 12월에는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과 데이비드 립턴 재무차관이 수차례 한국을 찾았다. 당시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국과 구제금융 프로그램 협상을 벌였던 국제통화기금(IMF) 협상단에 미국 측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적지 않은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정설(定說)이다.

최근 레비 차관의 방한 성격은 이전과는 다소 다르다.

미국이 추가 대북 제재안(制裁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는 반면 한국 정부는 이견을 보이고 있는 미묘한 시기에 대북 금융제재라는 다소 비경제적인 이유로 방한한 것이다.

○ 한국 정부의 ‘마이 웨이’ 견제 의도?

북한 돈줄 죄기가 미국의 대북 전략에 핵심 부문으로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미 행정부의 대테러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정책을 국제금융 차원에서 총괄하는 레비 차관의 한국 방문은 복합적 의미를 지닌다.

레비 차관은 서울에서 외교통상부와 재정경제부 당국자들을 만나 유엔 안보리의 대북 금융제재에 대한 한국의 입장, 한국 정부의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 등 대북교류가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에 미칠 영향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이와 관련해 권오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20일 정례브리핑에서 “레비 차관이 대량살상무기 부분에 대해 언급을 했지만 이 문제는 외교안보부처의 종합적인 조율과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해 미국 측으로부터 모종의 요구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미 행정부의 분위기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미국이 몇 주 내에 내놓을 대북 추가 제재안의 핵심은 북한의 돈줄 죄기, 즉 금융제재”라고 강조했다.

이 소식통은 또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안의 이행에 앞서 한국이 다른 행보를 보여 풍선의 한쪽이 새는 결과를 낳을까 봐 예의 주시하는 상태에서 이를 예방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의 일환으로 레비 차관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전문가는 “미국은 한국이 끝내 대북정책에서 미국과 불협화음을 빚을 경우 직간접적으로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을 택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인 미국의 국력과 현재 한국 경제의 구조를 감안하면 미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경제적으로 한국을 흔들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