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쑤저우(蘇州)는 운하가 많다. ‘동양의 베네치아’로까지 불린다. 중국 특유의 과장이 섞였지만 항저우(杭州)와 함께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天上天堂 地下蘇杭)’라는 말도 있다. 한국 여행사의 관광 상품에도 ‘소주 항주 상해’는 단골 메뉴다.
관광지로만 여겨졌던 쑤저우가 요즘 경제 발전으로 주목받는다. 지역내총생산(GRDP)은 2001년 212억 달러에서 지난해 499억 달러로 급증했다. 외국자본 유치액도 72억3000만 달러에서 153억4000만 달러로 늘었다. 이 지역 성장엔진인 쑤저우 공업원구(園區·경제특구)는 글로벌 기업이 대거 들어선 첨단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얼마 전 현지 취재를 다녀온 후배 기자는 경이적 변화의 원동력으로 ‘친상(親商)’을 꼽았다. 한국에서 쓰는 말로 기업 친화적 마인드쯤 된다. 기업에 대한 세제(稅制) 혜택도 그렇지만 ‘공무원은 기업을 위한 존재’라는 인식과 행동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삼성전자와 독일 질크로니크사(社)의 반도체 합작법인을 최근 유치한 싱가포르도 비슷하다. ‘질 좋은 일자리’를 끌어오기 위해 법인세 감면과 정부 보조금 지원, 싼 가격의 공장용지 임대 등 파격적 조건을 내놓았다. 한국이라면 사무관급이 맡을 일을 경제개발청장이 직접 나서 처리하는 모습에 삼성전자의 협상 실무자가 감동받았단다.
두 나라뿐 아니다. 요즘 세계는 ‘기업 모시기 경쟁’이 한창이다. 경쟁력 있는 기업을 한 개라도 더 유치하는 것이 부(富)와 일자리를 늘리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 미국의 앨라배마 주와 조지아 주도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극진한 정성을 기울였다.
국력을 대표하는 결정적 잣대는 이제 군사력이 아니다. 정말 세금 내는 게 아깝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위원회 수는 더더욱 아니다. 한 나라가 자랑할 수 있는 사기업의 수가 동원할 수 있는 군함의 수보다 국력을 가늠하는 잣대로 훨씬 보편타당성이 크다는 어느 분석은 설득력을 지닌다.
요즘 한국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기업의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국내외 기업의 신설, 증설은커녕 있던 공장마저 해외로 빠져나간다. 기업인들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다. 포스코 본사 불법점거 사건이나 일부 ‘귀족 노조’의 습관성 파업을 보면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정부 당국자나 정치인들의 관존민비(官尊民卑) 의식도 그리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권오규 신임 경제부총리는 삼성전자 공장의 싱가포르행(行)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까지 기업 신증설이 안 된 게 뭐가 있는지 이야기해 봐라”고 되받아쳤다. 그는 “경제는 정치의 하위개념”이라고도 했다.
정부 경제팀 수장(首長)의 현실 인식이 이런 수준이다. “경위야 어쨌든 좋은 공장을 놓쳐 아쉽다. 법과 제도, 국민의식에서 개선할 부분을 살펴보겠다”고 하는 것이 정상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최소한의 공복(公僕)의식을 가졌다면.
기업을 불러오는 나라와 기업을 내쫓는 나라, 어느 쪽이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명백하다. 정치 경제 노동 교육 등 각 분야에서 후자(後者)로 치달을수록 불행해진다. 방향을 잘못 잡은 열정이 지배하는 나라가 자멸(自滅)한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권순활 경제부장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