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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뿐인 ‘포스코사태’]盧정부 ‘노조 짝사랑’이 악습 키워

입력 | 2006-07-22 02:57:00

노조원 자진해산21일 새벽 경북 포항시 포스코 본사 건물을 점거 중이던 전문건설노조원들이 농성장을 빠져나와 1층 로비에서 경찰의 확인 절차를 밟고 있다. 로비로 내려오는 2층 복도에 이탈 노조원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줄지어 서 있다. 포항=전영한 기자


《경북 포항지역 전문건설노조원들의 포스코 본사 불법점거 사태가 노조원들의 자진해산으로 종결됐지만 남은 상처가 크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불법집단 행동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한 정권 핵심부의 미온적 태도라는 분석이 많다. 노동계 등과 ‘코드’를 맞춘 현 정권의 이념적 편향성이 노조에 강경투쟁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얘기다. 》

○ ‘법과 원칙은 말뿐’-정부가 화를 키웠다.

현 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노동계 등이 주도하는 불법집단행동에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보여 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1980년대 노동문제 변호사 시절 주요 파업 현장 중재에 나선 인연이 있는 데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노동계의 도움을 받았던 것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분위기는 노조 등이 합리적 대화보다는 일단 집단행동을 벌인 뒤 청와대나 정부 측과 직거래를 통해 목적을 관철하는 관행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단적인 사례는 정권 출범 초인 2003년 4월 KBS 사장 임명 문제였다. KBS 노조의 거센 반발에 부닥친 서동구 KBS 사장이 임명 9일 만에 사직서를 제출하자 노 대통령은 KBS 노조 및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만난 뒤 조건부 사표수리 의사를 밝혔다.

노동계와 진보 진영의 입장에서는 “밀어붙이면 청와대도 굴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할 수 있는 상징적 사례였다.

청와대 내 주요 포스트에 노동운동과 시민 사회단체 출신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어 이런 분위기는 더욱 공고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우 전 대통령정책실장은 2004년 7월 청와대브리핑에 “노사정 간 협력 분위기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노사 문제를 자율 조정하는 네덜란드 등 유럽 일부 국가의 모델과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노조의 경영참여를 제도화하는 네덜란드 모델을 청와대 핵심 인사가 거론하자 그렇지 않아도 노조에 밀리고 있던 재계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한동안 논란이 일었다.

○ 불법행위를 방치했다?

이번 포스코 불법점거 사태에서 청와대는 점거 사태 발생 후 8일 만에 엄정 대처를 언급했다. 포항지역 주민들이 폭력시위에 반발해 곳곳에서 노조원들에게 항의하는 등 자발적인 비판 여론이 들끓은 뒤의 일이다. 사태가 그 지경에 이르도록 상황을 방치한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와도 할 말이 없게 돼 있다.

포항의 한 상공인은 “정부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다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떠밀려 법에 따른 원칙대응 방침을 내놓은 게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여권 핵심 인사들 간의 인식 혼란도 불법에 대한 단호 대처를 지연시키고 있다.

5월 평택미군기지 이전 반대 집회에서의 폭력 사태에 대해 노 대통령은 “법과 원칙에 따라 엄격히 대처하라”고 했지만 열린우리당 강금실 당시 서울시장 후보 등은 “평택 시위 현장에 군 병력 투입은 필요없었다”고 시위대를 옹호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공권력을 집행하는 경찰 등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대처하라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경찰은 이번 포스코 사태에서도 권력의 눈치를 보며 소극적으로 대처하다 20일 청와대의 ‘지시’가 내려온 뒤에야 공권력 투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농민 시위 과정에서 농민 2명이 사망하자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허준영 경찰청장을 퇴진시켰다. 불법 폭력을 막는 과정에서의 문제가 곧바로 문책으로 이어지는 풍토에서 누가 시위진압에 나서겠느냐는 자조가 나오기도 했다.

불법행동에 대한 사법처리도 엄정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10∼14일 서울에서 있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 과정에서 서울 도심이 시위대로 인해 완전히 마비되고 경찰이 다수 부상했지만 구속자는 한 명도 없었다.

2003년 3월 경남도청에서 열린 한-칠레 FTA 국회비준 반대 시위를 주도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로 불구속 기소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21일 1심에서 벌금 2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특수공무집행방해 죄의 법정형이 ‘벌금 1500만 원 이하 또는 징역 10년 이하’인 데 비해 지나치게 관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재판부는 “집회 성격이 공익을 추구했고 강 의원이 앞으로 폭력시위를 하지 않겠다고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해 벌금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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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포항=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