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저녁 전북 김제시 모악산 금산사에서 만난 송월주 스님은 북한 미사일 사태와 노사문제 등에 관해 1시간 반 동안 거침없이 견해를 밝혔다. 김제=박영철 기자
《해 저문 산사는 깊은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멀리서 소쩍새가 구슬피 우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스님은 1시간 반 동안 거침이 없었다. 나라 걱정이 큰 듯 이따금 목소리가 격해지기도 했다. 원로 스님이자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송월주(宋月珠) 스님은 원래 햇볕정책을 지지했다. 그런 스님이 20일 한 집담회에서 “김일성이 김구 선생을 이용해 먹었던 것처럼 북한은 김대중을 이용해 먹었다”고 했다. 21일 저녁 스님이 주석(駐錫)하는 전북 김제시 금산사를 찾았다. 월주 스님은 느닷없는 방문에 “나는 대북문제에 깊은 연구도 없고 전문가도 아닌데 늦은 시간에 이 산속까지 뭐 하러 왔느냐”고 했다. 그러나 이내 “대북문제에 대한 시각과 정책의 일대전환이 필요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국민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러시아, 중국을 포함한 6자회담 참가국과 다른 나라들이 만류한 미사일 발사를 강행해 동북아의 긴장이 높아졌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런 긴박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이고 안이하게 대처했다. 북한을 옹호하는 듯한 표현도 했다. 일본 자민당이 선제공격이라도 하겠다고 하자 강도 높게 비난했다. 하지만 미사일 발사의 당사자인 북한에 대해서는 같은 강도로 비난하지 않았다. 정부가 대처를 잘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10년이 다 돼가는 햇볕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은 6·15공동선언 발표 후 국내에 돌아와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국민은 한반도에 더는 긴장이 없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 희망적인 기대는 지금에 와서 찾아볼 수 없다. 북한에는 수해와 기아로 아사자와 폐병환자 등이 많다. 물론 인권 차원에서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북한이 그에 상응하는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인도적인 차원의 비료 식량 지원을 요구하지만 교류를 하루아침에 중단해 버리거나 이산가족 상봉도 일방적으로 중단하고 있다. 물리적 충돌은 피해야 한다. 전쟁도 막아야 한다. 하지만 남북 관계가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만큼 강온 양면 전략이 필요하다.”
―그 사이 여러 차례 북한에 다녀오셨는데….
“10번 다녀왔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로서 북한을 방문해 농기계수리공장 2곳을 지어주고 양계장 산란장 만드는 데에도 동참했다. 탁아소와 무료급식소, 수액제 공장을 짓는 데도 도움을 줬다. 하지만 북한은 우리의 인도주의적 접근을 악용한다. 핵을 만들겠다고 하고 미사일을 발사한다. 대북정책의 일대전환이 필요하다. 감상적으로 이끌리지 말고 민족공조를 이뤄야 한다.”
―북한이 적반하장 격으로 이산가족상봉 중단과 관광객의 개성시내 출입금지 방침을 밝혔습니다.
“인도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 애초부터 금강산에 면회소를 짓는 것이 아니었다. 상징적으로 판문점이나 휴전선에 건설해야 했다. 동독과 서독에서는 통일 이전에 이미 600만 명이 오갔다는데 우리는 1세대 가운데 일부만 이산가족 상봉을 이뤘다. 그런 상봉마저 막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비인도적이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화해 협력을 이끌어 안보 불안감을 국민에게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할 말은 하면서 지원하고, 줄 것은 주되 국제기구 등을 통해 투명성을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포스코 사태와 노사 문제로 국민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노동환경이 열악했고 임금으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그럴 때는 전태일 씨 같은 노동운동가가 필요했고 근로자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일부 대기업 노동자들이 파업에 더욱 적극적이다. 대기업 노동자들은 임금을 인하하는 자기희생 속에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요구하면서 자신들의 임금도 올려 달라고 하고, 노동환경도 바꿔달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노사는 더 늦기 전에 전면적인 휴전을 선언해야 한다. 정부도 불법 파업은 단호히 막아야 한다. 그동안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파업부터 하고 보자는 분위기가 만연했던 것이다.”
스님은 또 미군 기지의 평택이전 문제에 대해 “국회 인준을 받았고 한미 간에 약속한 사항이기 때문에 반미감정으로 발전되지 않도록 정부가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왔더니 칠흑 같은 어둠이 산사를 덮고 있었다. 스님을 모시고 있는 산성 스님은 “어제 스님의 말씀이 보도된 뒤 전국 각지에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줘서 속이 시원하다’는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고 전했다.
김제=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