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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뿐인 ‘포스코사태’]강성 지도부가 불 지를까 두려웠다

입력 | 2006-07-22 02:57:00

무기창고인지… 사무실인지…21일 경북 포항지역 전문건설노조원이 모두 빠져나간 포스코 본사 사무실에는 LP가스통을 개조해 만든 사제 화염방사기, 쇠파이프 등 무기로 돌변할 수 있는 위험물이 널려 있었다. 포항=전영한 기자


“지옥을 탈출한 느낌이에요.”

21일 새벽 경북 포항시 포스코 본사 5∼12층의 점거 농성장을 빠져나온 포항지역 전문건설노조원 대부분은 패배감보다는 안도감을 나타냈다. 이들은 한결같이 지도부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

▽“과격파가 건물에 불 지를까봐 겁났다”=노조원들은 “지도부가 노조원들의 자진해산을 강제로 막았다”며 “빨리 끝낼 수도 있었던 상황을 더디게 만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심지어 농성이 길어지면서 환자가 발생해 치료를 위해 건물을 빠져나가려 했으나 지도부가 “잘못 보이면 일감을 주지 않겠다”며 위협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한 40대 노조원은 “얼떨결에 농성에 참여하게 됐는데 몸이 안 좋아 나가려고 했으나 지도부가 물리적으로 막는 바람에 갇혀 있었다”며 “며칠 동안 육체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원과 지도부 사이에 갈등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노조원은 “일부 강성 지도부가 건물에 불을 지를까봐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21일 새벽 일부 지도부가 노조원들과 섞여 밖으로 나온 데 대해선 “배신당한 느낌”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지도부는 사수대와 실천단을 구성해 건물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길목을 지키게 했고, 20일 새벽에는 아래로 내려오던 한 노조원이 사수대의 파이프에 맞아 머리가 찢어져 피를 흘린 채 1층 로비에 나타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농성장을 빠져나오려던 노조원들은 사수대원의 감시를 피해 배관을 타거나 서류 운반용 엘리베이터 속을 기어 내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전쟁터 방불케 한 점거농성장=노조원들이 모두 빠져나간 현장은 흡사 전쟁터 같았다.

계단에는 바리케이드로 사용됐던 의자와 사무실 집기들이 사람 키 높이만큼 쌓여 있었고, 사무실 곳곳에는 칸막이들이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다. 또 파손된 사무실 집기들과 먹다 남은 컵라면, 과자 등이 악취를 풍기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건물 안에는 쇠파이프가 나뒹굴고 있었고, 특히 4층에서 5층으로 향하는 계단 입구 근처에는 경찰의 진입을 막기 위해 만든 사제 화염방사기와 대형 LP가스 용기 3, 4개가 눈에 띄었다.

포스코 측이 18일 전기 공급을 끊은 뒤 비상구 표시등의 전선을 뽑아내 비상조명의 전력공급원으로 사용한 흔적도 보였다. 천장의 형광등은 노조원들의 무기로 사용된 듯 10여 개만 남겨둔 채 대부분 빠져 있었다. 20일 물 공급이 끊긴 뒤 화장실 변기에는 오물이 가득 쌓여 악취가 코를 찔렀다.

포스코 관계자는 “공개된 5층 외에도 건물 전체가 많이 훼손됐다”며 경찰의 현장조사가 끝나는 23일 이후 내부수리를 거쳐 정상업무까지는 일주일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8일 반나절 동안 밤낮 관념 사라졌다=농성 기간 중에 노조원들은 컵라면과 초코파이만으로 끼니를 때웠다. 건물 내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밤낮의 시간관념이 사라져 자다가 일어나 먹고, 졸리면 다시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밤에는 침낭이 없으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추웠다고 말했다.

노조원들은 먹을거리는 걱정이 없었지만 단수 이후에는 화장실 용변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특히 흡연자들은 담배가 떨어져 금단증상을 보이기도 했는데 한 노조원은 “담배만 있었다면 농성을 더 이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