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불법은 ‘묵인’을 먹고 큰다…상처뿐인 ‘포스코 점거 사태’

입력 | 2006-07-22 02:57:00

깨진 ‘대화의 창’포스코 본사를 불법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던 경북 포항지역 전문건설노조원들이 9일 만인 21일 자진 해산했다. 그러나 노조원들이 파손한 5층 유리창은 노조의 불법 파업이 우리 경제에 남긴 상처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듯하다. 포항=최재호 기자


20일 오후 10시 경북 포항시 포스코 본사 정문. 8일째 건물을 불법 점거해 농성을 벌이던 포항지역 전문건설노조원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왔다. 경찰 7000여 명이 건물을 에워싸고 강제진압을 준비하자 노조원들의 동요가 시작된 것이다. 노조원들의 이탈은 21일 오전 5시에 끝났다. 화염방사기까지 동원해 저항하던 노조원들이 20일 오후 2시 청와대가 강경 대응 방침을 천명한 지 15시간 만에 백기투항했다.

청와대가 초기부터 단호하게 대응했다면 이번 사태가 9일씩이나 끌지 않고 조기에 마무리됐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불법 파업과 폭력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바람에 공권력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하고 불법 폭력의 악순환을 불렀다는 비판도 높아지고 있다.

12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 대회’ 참가자 중 일부는 경찰에게 죽봉과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보도블록을 깨 던지는 등 폭력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 10여 명이 귀가 찢어지는 등 부상했지만 경찰은 시위대의 청와대 접근을 막는 데 급급했다.

5월 경기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의 시위 때도 일부 시위대가 휘두른 목봉에 맞아 군 장병 10여 명이 다쳤고, 부상이 심한 병사 2명은 헬기로 병원에 이송됐다.

하지만 정부는 불법 폭력을 행사한 시위대를 일벌백계하기보다 오히려 공권력 자제를 강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평택 시위 당시 많은 장병이 다쳤는데도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시위대의 폭력에 인내심을 갖고 자제해 준 데 대해 믿음직스럽고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5월 말까지 집회와 시위 등 집단 불법 행위와 관련해 입건된 사람은 모두 4223명으로 지난해 1년간 입건된 7193명의 58.7%에 이른다. 하지만 구속된 사람은 93명으로 지난해 211명의 절반도 안 된다.

집단 불법 행위와 관련한 입건 대비 구속자 비율은 2003년 4.3%, 2004년 3.4%, 2005년2.9%, 올해 들어 5월까지 2.2%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갈수록 약해지는 당국의 대응이 불법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갈등 조정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고 있다. 이번 포항사태 때도 정부는 초기에 수수방관하다 포항 시민의 비판여론이 비등해지자 뒤늦게 관계 부처 대책회의를 열었다.

지난해 말 농민시위 도중 농민 2명이 숨졌을 때도 청와대가 여론의 눈치를 살피다 당시 허준영 경찰청장을 문책 경질하는 등 무원칙하게 대처하는 바람에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따라서 불법 폭력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공권력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다. 한성대 이창원(행정학) 교수는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불법 폭력사태에 엄정하게 대처하고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