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이 온통 ‘2020년’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있다.
경기 수원시에 있는 삼성전자 생활가전연구소의 미래기술그룹 생활문화연구팀이다.
삼성전자는 미래의 가전제품을 연구하기 위해 지난해 기계공학 건축 환경 소비자심리학 전공자들을 모아 이 팀을 꾸렸다.
우리의 미래 가정환경은 어떤 모습일까. 삼성전자 생활가전연구소를 찾아가 이들 전문가가 제시하는 미래상을 가상 시나리오로 꾸며 봤다.
○ 초저소음 로봇청소기 알아서 척척
2020년 서울.
맞벌이 주부 이미래(33) 씨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직장 회식 때 먹은 삼겹살 냄새가 연분홍색 실크 블라우스에 가득 뱄다. 그는 블라우스를 옷걸이에 건 뒤 드레스 룸에 설치된 ‘공기 세탁(에어 워시·Air wash)’ 버튼을 눌렀다. 뜨거운 공기가 사방에서 나오더니 옷의 냄새와 먼지를 말끔히 없앴다.
2020년에는 세탁기와 옷장이 분리되지 않는다. 2006년 한국에 선보인 ‘은나노 세탁기 에어 워시’가 붙박이 가구 형태로 발전된 것이다.
또 드레스 룸에 설치된 섬유인식 시스템은 보관된 옷의 종류에 따라 적합한 온도와 습도를 내보내 한결같이 뽀송뽀송하고 부드러운 옷감 상태를 유지해 준다.
침실의 쾌면(快眠) 시스템을 작동시키자 약간 서늘해졌다. 스피커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나오고, TV 모니터에서는 숲과 꽃이 펼쳐졌다. 이 씨는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사람이 인식할 수 없는 20dB의 소음을 내는 로봇 청소기는 밤사이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 냉장고 모니터로 음식 유통기한 확인
이 씨가 직장에 있는 동안 80세인 그의 시아버지는 소일거리로 종종 설거지를 한다.
허리를 굽혀 그릇을 넣어야 했던 식기세척기는 시아버지의 눈높이로 올라왔다. 1990년대 국내에 소개됐지만 2006년까지 10%대에 머물던 식기세척기의 보급률은 2020년 90%대로 높아졌다.
2006년부터 국내에 소개된 ‘누드 분양제’는 2020년 보편화됐다. 시공사가 골조 설비만 제공하고 소비자가 나머지 마감재를 취향대로 고르는 것이다.
감자 수박 김치 등은 마치 서랍처럼 칸칸이 나뉜 저장고에 보관한다. 우유 계란 등에는 전자태그(RFID)가 붙어 있어 냉장고 모니터를 통해 유통기한을 확인할 수 있다.
경기 수원시에 있는 삼성전자 생활가전연구소의 미래기술그룹 생활문화연구팀. 가전제품의 미래를 연구하는 연구원들은 “미래에는 가전제품과 가구의 경계가 사라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수원=박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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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한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이창희 삼성전자 생활문화연구팀 책임연구원은 “가전제품과 가구는 빠르게 융합(컨버전스)될 것”이라고 말했다.
생활문화연구팀은 해외 유명 가구박람회와 정보기술(IT) 트렌드 보고서 등을 부지런히 연구한다. 여성의 파워가 커지면서 여성 소비자 연구도 중요해졌다.
최도철 삼성전자 생활가전연구소장(전무)은 “깐깐한 한국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제품이라면 외국 시장에서도 승산이 있다”며 “몇 년 이내에 드라이클리닝 기능을 갖춘 세탁기도 선보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수원=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