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이 며칠 전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제주도 모임에서 한 특강 전문(全文)을 꼼꼼히 읽어 봤다. 한마디로 아전인수(我田引水)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이 실장은 오늘날 우리 사회를 “이들 극단세력(극우, 극좌세력)으로 인해 합리적 보수, 합리적 진보, 그리고 이 두 지향을 함께 아우르는 실사구시적 노선 역시 발붙일 수 없는 지형이 만들어졌다”고 진단했다. 그렇다 치자. 그러나 그 다음 말은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가장 큰 피해자는 참여정부입니다.”
그는 “이들(극단세력)은 모든 국가적 사회적 사안을 친미냐 반미냐, 친북이냐 반북이냐… 친정부냐 반정부냐, 심지어 친노냐 반노냐는 이분법적인 잣대로 구분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참여정부가 배겨 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실장이 예로 든 모든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친(親)’과 ‘반(反)’이 서로 날을 세워 싸우도록 한 게 누구이며 언제부터인가. 참여정부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다. 국민이 정말 배겨 내기 힘들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만 해도 그렇다. 이 실장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북한 내부적 필요성과 미국이나 국제사회를 향한 정치적 시위를 목적으로 감행한 것이라는 우리의 판단은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남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은 아니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그는 곧이어 이렇게 말했다. “부산을 떨고 야단법석을 떤다면 국민이 불안해하고 한반도의 긴장은 높아지고, 시장이 출렁거리면 결국 북한의 의도에 말리는 셈이다.” 뒤집어 읽으면 ‘북한의 의도’는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한반도 긴장을 높이고, 시장을 출렁이게 만들려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속내가 엿보인다. 그런데도 겉말은 태연하다.
이 실장은 “일부 극우적 언론의 태도를 보면 가끔은 한국 신문인지, 일본 신문인지 분통이 터진다(‘분통이 터진다’는 표현은 청와대브리핑에는 ‘헷갈릴 때가 있다’로 바뀌어 있다)”며 “때리는 시어머니(일본)보다 말리는 시누이(국내 언론)가 더 밉다는 속담이 생각난다”는 말도 했다. 은근히 걱정된다. 북한을 제재하라는 국제사회가 이 속담을 인용해 “때리는 시어머니(북한)보다 말리는 시누이(한국)가 더 밉다”며 분통을 터뜨릴까 봐.
일부 신문이 알리바이용으로 일본을 한번 슬쩍 비판하고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정부만 매일같이 때리고 있다는 말에도 할 말이 있다. 참여정부야말로 알리바이용으로 북한을 한번 슬쩍 비판하고선,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세력이나 언론을 매일같이 비난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길 바란다. 국민정서상 일본이나 일본을 두둔하는 세력은 아무리 두들겨도 괜찮다는 얄팍한 계산도 버리는 게 좋다. 한국의 어떤 언론도 미사일 문제와 과거사 문제를 구분할 정도의 양식은 갖고 있다.
이 실장은 “참여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국정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안보 외교정책을 추진해 왔다”며 “참여정부가 탄생했을 때 가장 먼저 안보를 걱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3년 반 한반도 평화가 깨진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럴듯하다. 그러나 역대 어느 정권치고 안보 외교정책을 국정의 우선순위에 두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 지금 걱정하는 것은 평화가 깨져서가 아니다. 이 정부가 평화를 유지하고 관리할 능력이 있는지를 걱정하는 거다. 다른 정권에서는 하지 않아도 될 걱정거리였다.
그러나 더 큰 허전함은 다른 데 있다. 이 실장의 강연에는 인사치레로라도 있을 법한 참여정부의 잘못, 좋게 말해 시행착오에 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다. 그러고 보니 이 실장뿐만 아니다. 최근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 청와대 참모들의 발언이나 기고에도 내 탓은 없고 오로지 남의 탓뿐이다. 그런 무오류의 정부가 가까운 5·31지방선거에서 왜 기록적 참패를 당해야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