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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퍼블리즌 "공개한다. 고로 존재한다"

입력 | 2006-07-24 17:04:00

퍼블리즌의 자기공개 행위는 때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다. 미국의 한 대학 여자축구팀 선수들이 인터넷에 올린 ‘신입생 신고식’ 사진. 올해 5월 사건이 불거지면서 감독은 사임하고 축구팀 활동은 중단됐다. 사진 출처 배드족스닷컴(www.badjocks.com)


반라의 단체사진을 공개했다가 축구부 문을 닫게 만든 대학 여자 축구부원들, 사생활을 셀프 카메라에 담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여성 컨설턴트, TV 리얼리티 쇼에 출연하려 장사진을 친 수천, 수만 명의 미국인들….

남들 같으면 감추고 싶을 사생활을 이들은 왜 적극적으로 공개할까.

워싱턴포스트는 23일 '나를 봐주세요, 클릭해 주세요'라며 자신을 알리는 신세대 퍼블리즌(publizen)의 등장을 소개했다. 자기 홍보(publicity)와 네티즌(netizen)의 합성어다. '공개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이들의 모토를 정리할 수 있을 법하다.

신문은 '알려지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 말고는 이들의 특징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잊혀 지내기보다는 (인터넷이라는) 공개장소에 나와 난처한 상황을 겪는 것을 오히려 즐긴다. 어떤 점에서는 일상의 시시콜콜한 얘기를 남들 앞에 늘어놓기 좋아하는 한국의 '싸이월드 세대'를 연상시킨다.

자기 공개를 즐기는 사람답게 이들은 신문인터뷰에서도 적극적이었다. 여성 컨설턴트 잉그리드 위즈 씨는 자신을 포함한 퍼블리즌이 "자기도취적 나르시즘에 빠졌다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올 여름부터 미 의회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대학생 데이브 파인먼 씨는 "인터넷은 (털어놓기 어려운) 속마음이나 (논쟁으로 이어질 민감한)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데 좋은 매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의 싸이월드와 비슷한 '마이스페이스닷컴'에 자신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인들, 특히 개인의 자유가 유독 강조되던 1960년대를 살아온 베이비 붐 세대들은 사생활(프라이버시)을 부둥켜안고 살지 않았던가. 무엇이 퍼블리즌 세대의 상반된 특징을 가져왔을까.

버클리대학의 문화인류학자인 데이너 보이드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 프라이버시란 구시대의 관념"이라고 말했다.

부유한 환경에서 학교, 가정, 과외활동을 부모의 손에 이끌려 다닌 요즘 젊은 세대는 꽉 짜여진 일정 속에서 누군가의 관찰을 받으며 자랐다. 부모가 없는 곳에선 학교 선생님, 운동팀 코치, 심리 치료사가 '감시자의 눈'이 됐다. 프라이버시가 싹틀 공간이 애초부터 제한적이었다는 것이다.

신문은 이들이 사생활 침해에도 무신경하다고 분석했다. 부시 행정부가 미국인과 해외 테러조직 혐의자 사이의 국제전화 통화 기록을 '법원의 영장 없이' 뒤졌는데도 거리시위 등 적극적인 항거가 일어나지 않은 것은 프라이버시를 중시하지 않는 이들의 특징 때문이라는 것.

이미 미국의 기업과 신용카드회사들은 이들의 쇼핑 행태와 구매방식을 들여다보고 있다.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올 법한 상황이지만 저항이 일어난 일은 없었다. 하물며 '테러와의 전쟁'에 필요하다는 명분을 정부가 제시한다면, 이에 맞서 '사생활 보호'를 앞세워 저항할 욕구도 갖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신문은 "퍼블리즌 세대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