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위스키 잔을 들고 입에는 시가를 문 아버지가 어디선가 흐뭇하게 웃고 있을 것만 같았다.
빨리 달려가 껴안아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제는 이 세상 분이 아니라는 사실이 떠오른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31·미국).
그는 24일 잉글랜드 호일레이크의 로열리버풀GC(파72)에서 끝난 제135회 브리시티오픈에서 우승을 확정짓는 챔피언 퍼트를 한 뒤 통곡했다.
전담 캐디와 껴안고 흐느낀 그는 그린 밖에서 기다리던 아내와 함께 목 놓아 울었다.
오랜 암 투병 끝에 5월 세상을 뜬 아버지(얼 우즈)와 우승의 기쁨을 함께할 수 없어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우즈의 골프 인생에 아버지는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세 살 때 아버지의 영향으로 골프 클럽을 잡기 시작한 우즈의 곁에는 늘 아버지가 있었다. 조언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때론 호통도 마다하지 않았다.
10년 전 우즈는 이 대회에 아마추어로 출전해 2라운드에서 66타를 치는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 아들과 동행한 얼 우즈는 “스무 살인 내 아들이 큰 어른들과 싸워도 될 때가 된 것 같다”며 프로 전향을 결정했다.
그로부터 우즈는 새로운 골프 역사를 써 나갔고 그 곁에는 언제나 아버지가 있었다. 1997년 4월 우즈가 ‘명인 열전’이라는 마스터스에서 우승하자 이들 부자는 뜨겁게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가 두 달 전 저세상으로 떠나면서 우즈는 큰 충격에 빠졌다. 지난달 US오픈에서는 프로 데뷔 후 첫 메이저대회 예선 탈락의 수모까지 맛봤다.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아버지와의 숱한 추억이 어려 있는 브리티시오픈에서 다시 일어서리라 마음먹은 끝에 부친상 후 첫 우승을 최고의 무대에서 장식했다.
우즈는 우승 인터뷰에서 “어릴 적 아버지의 가르침이 큰 도움이 됐다”며 먼 하늘에서 응원했을 아버지를 떠올렸다. 코흘리개 때부터 아버지는 ‘멘털 게임(심적인 경기)’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 때문에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
이번 대회에서 우즈는 평소와는 달리 폭발적인 파워는 감추고 정교하게 코스를 공략했다. 자연 환경 그대로 조성한 링크스 코스에 순응했다. 나흘 동안 드라이버는 1라운드 16번 홀에서 단 한 차례만 잡았을 뿐 줄곧 2번 아이언과 3번 우드로 티샷을 했다.
그 덕분에 올 시즌 55%에 머물던 페어웨이 안착률을 이 대회에서는 86%까지 끌어올리며 스코어를 줄여 나갔다. 드라이버를 치면 370야드까지 보낼 수 있으나 컨트롤이 어렵고 벙커나 러프에 빠지면 애를 먹게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특히 우즈는 파5 홀에서 나흘 내내 보기는 단 1개도 없이 버디 10개와 이글 2개로 14타나 줄였다. 최종 스코어 18언더파 가운데 77.8%가 파5 홀에서 나온 셈. 그 대신 까다로운 파4 홀에서는 무리한 플레이 대신 파 세이브를 노리는 한층 성숙하면서 현명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메이저 11승을 올린 우즈가 잭 니클로스의 메이저 최다승 기록(18승)을 넘어설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한편 허석호는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5개와 보기 3개로 2타를 줄여 최종 합계 8언더파 280타를 기록해 브리티시오픈 사상 한국 선수로는 역대 최고인 공동 11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종전 기록은 2004년 최경주의 공동 16위. 최경주는 2라운드까지 공동 91위(2오버파 146타)에 그쳐 5년 만에 예선 탈락해 아쉬움을 남겼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제135회 브리티시오픈 최종 성적순위선수파스코어①타이거 우즈-18270(67-65-71-67)②크리스 디마르코-16272(70-65-69-68)③어니 엘스-13275(68-65-71-71)④짐 퓨릭-12276(68-71-66-71)⑤다니하라 히데토-11277(72-68-66-71)세르히오 가르시아277(68-71-65-73)⑪허석호-8280(68-73-6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