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24일 오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받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을 물어 이종석 통일부 장관에게 전방위적으로 쏟아지는 비판이 심상치 않다.
한미동맹 약화를 우려하는 쪽에서는 이 장관이 ‘미사일 발사를 막지 못한 책임은 미국에 있다’는 식으로 발언한 것은 한미동맹을 심각한 위기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쌀과 비료 지원이라는 인도주의적 사안을 정치적 문제와 연계한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며 비난의 화살을 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도 이 장관에게 “미국과 짜고 인민들이 먹는 쌀을 가지고 동족을 우롱했다”며 등을 돌렸고, 한나라당은 24일 아예 이 장관에게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믿었던 여당 의원들도 엄호사격보다는 비판이 더 많다. 말 그대로 고립무원의 형국이다.
▽동네북 이종석?=이 장관의 처한 상황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미사일 발사로 미국이 가장 큰 (정책적) 실패를 했다고 발언했는데 이는 책임을 전가하는 말장난”이라고 이 장관을 몰아붙였다. 외교관 출신인 같은 당 정의용 의원도 “이 장관의 발언은 미국이 한반도 안보를 위태롭게 조장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고 지적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남북 관계 악화를 만든 주 요인은 쌀과 비료 등의 지원 중단”이라고 몰아붙였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완전 실패작으로 이제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며 이 장관도 즉각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10여 명의 장관을 모셨다는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요즘 이 장관을 보면 김영삼 정부의 초대 통일부 장관이었던 한완상 장관 시절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는 1993년 3월 11일 비전향장기수 이인모 노인을 북한으로 송환했지만 북측은 다음 날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다. 이듬해 3월 19일에는 유명한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남북관계를 꽁꽁 얼어붙게 했다. 미국도 1994년 6월 한국에 알리지 않고 북한 정밀타격(surgical strike) 계획을 추진하는 등 여기저기서 차이는 상황이었고, 한 장관도 코너에 몰렸다.
▽‘집토끼도 산토끼도 다 놓쳐’=이 장관이 생각이 서로 다른 양측에서 협공을 받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2월 최 의원에 의해 공개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록 유출 파문 때도 이 장관은 소위 ‘자주파’와 ‘동맹파’들의 타깃이 됐다.
일각에서는 이 장관이 노무현 정부 출범 초 대통령국정상황실과 민정수석비서실 등 노 대통령의 측근들과 ‘코드 맞추기’를 하며 ‘자주파’ 쪽으로 갔다가 실세로 부상한 이후 △용산 미군기지 이전 협상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이라크 파병 등의 협상에서 ‘동맹파’로 선회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에 드러난 대북정책의 ‘총체적 실패’도 북한과 미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물론 이 장관은 이 같은 관측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내 머릿속에는 자주냐, 동맹이냐는 없고 오로지 한반도 평화와 국익만 생각한다”며 스스로를 ‘실용적 국익론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전여옥 최고위원은 “이 장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신의 학문적 근거를 바꿔 간 회색지대에 있는 학자 출신으로 이쪽 저쪽으로부터 모두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