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선택되는 집단적 기억의 주입이 아니라 대중에 의해 소비되는 기억의 재구성으로 변모하고 있다.” 역사학자인 김기봉 경기대 교수는 역사적 사실(fact)을 토대로 자유로운 상상(fiction)의 날개를 펼치는 오늘날 사극의 전성시대를 ‘팩션(faction·각색실화)시대’라 규정하며 역사가 기억의 ‘공급논리’에서 벗어나 ‘수요논리’에 의해 지배받는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역사가 권력가의 입맛에 맞게 선택된 단일품목으로 공급되는 소품종 다량생산 시대였다면 지금은 그 역사를 소비하는 대중의 입맛에 맞게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주장이다.》
조선왕조실록의 짧은 기록에 풍성한 상상력을 보탠 드라마 ‘대장금’과 영화 ‘왕의 남자’, 초인적 영웅 이순신을 고뇌하는 현실적 인간으로 재조명한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고구려 건국신화의 역사화를 꿈꾸는 ‘주몽’(MBC), 야사(野史)의 정사(正史)화를 추구하는 ‘연개소문’(SBS)…. 팩션시대의 총아로 각광받는 사극들의 밑바탕에는 이 같은 역사의 다원론이 숨어 있다.
이 같은 포스트모던 역사론은 ‘모든 기억 또는 역사 해석은 동등하다’는 상대주의로 기울면서, 수많은 기억과 역사 해석의 투쟁을 야기한다. 문제는 이 투쟁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학문적 엄밀성이 아니라 ‘시장의 논리’와 ‘다수결의 원칙’이란 점이다. 최근 고구려 붐을 타고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주몽’과 ‘연개소문’의 역사 왜곡 논쟁은 역사 해석의 새로운 문법 투쟁을 시사하는 사례들이다.
‘주몽’은 신화 속 인물을 역사적 존재로 치환시키면서 어떤 역사책에도 언급되지 않은 인물상을 만들어 냈다. 천제(天帝)의 아들인 해모수를 고조선의 영광을 부활하려는 장수로, 동부여의 금와왕은 해모수의 동지로, 물의 신인 하백을 멸족된 부족의 부족장으로, 계루부의 부족장인 연타발은 대형 상단의 최고경영자(CEO)로 둔갑시켰다. 당시 부여는 북부여, 동부여 등 여러 나라로 나뉘어졌으나 드라마에선 한 나라로 묘사된다.
‘연개소문’은 연개소문을 불세출의 민족영웅으로 묘사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까지 뒤집었다. 당태종을 격퇴한 안시성전투의 주인공을 안시성주(양만춘)가 아니라 연개소문으로 둔갑시켰다.
또 연개소문의 아버지 연태조를 귀족연합정권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왕권강화론자로 바꿔놓았으며, 고구려 관등(官等)의 하나인 조의(조衣)를 신라의 화랑과 같은 군사조직으로 해석하면서 연개소문이 어릴 적 김유신 가문에서 자랐다는 가정을 내세운다.
예전의 경우 논쟁의 초점은 이런 문제들이 정사에서 얼마만큼 일탈했느냐에 맞춰졌다. 최근의 비판은 다르다. 사실과 사실 사이의 여백에 상상력의 침투를 수긍하면서도, 사실의 영역이 침해되는 데 대한 비판은 좀 더 매서워지고 있다.
임기환(고구려사) 서울교대 교수는 “‘주몽’의 역사 해석은 신화를 드라마화한 것이기 때문에 판타지를 판타지로 옮겼다는 점에서 이해할 여지가 있으나 ‘연개소문’은 오로지 작가의 상상력을 위해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바꾸고 있다는 점에서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김기봉 교수도 “사실이 1과 2라는 숫자라면 상상력은 그 사이의 소수점에 머물러야지 숫자 자체를 바꿔서는 안 된다”며 역사 해석의 과잉이 초래하는 부작용을 우려했다.
무엇보다 일반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지상파 TV의 사극에 역사적 사실보다 상상력의 자유를 강조하는 팩션의 논리를 적용하는 것이 무리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김기흥(고구려사) 건국대 교수는 “시청자들이 드라마의 내용과 역사적 사실을 분리해 바라볼 것이라는 가정이야말로 공급자의 논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두 드라마 모두 단군과 치우천황 숭배를 곳곳에 배치하고 부여나 고구려를 황제국으로 묘사하는데, 이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과거의 영광’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대리 충족시키려 한 일제강점기 민족주의 사관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퇴영적 현상”이라며 사극이 좀 더 역사해석의 보편성을 추구할 것을 주문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