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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78년 세계 첫 시험관 아기 탄생

입력 | 2006-07-25 03:00:00


한 대학교 동창이 있다.

이 친구는 결혼하고 5년이 넘도록 아기가 없었다. 주위에서 “아이를 왜 안 낳느냐”고 물어볼 때마다 그는 대충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고민하던 친구는 아내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실패했지만 어렵게 두 번째에 성공했다. 이 친구는 쌍둥이 남매를 낳아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느닷없이 친구 얘기를 꺼낸 건 1978년 7월 25일 영국 올덤의 한 종합병원에서 태어난 아기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세상을 바꾼 그의 이름은 루이스 브라운. 세계 첫 시험관 아기다. 당시 그의 어머니 레슬리 브라운은 임신을 하지 못했다. 나팔관이 막혀 난소에서 만들어진 난자가 자궁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때문이었다.

9년간이나 아이를 갖는 데 실패한 브라운 씨 부부는 케임브리지대의 생리학자인 로버트 에드워즈 박사와 산부인과 의사인 패트릭 스텝토 박사를 찾아갔다. 에드워즈-스텝토 팀은 정자와 난자를 시험관에서 수정시켰고 48시간 뒤 수정란을 레슬리의 자궁에 착상시켰다.

12년 동안 100여 차례나 실패한 실험이었으나 이번엔 성공이었다. 분만 예정일을 3주일 앞두고 제왕절개를 통해 2.6kg의 건강한 아기가 태어난 것이다. 분만 장면은 유럽에 생중계됐다.

세계는 깜짝 놀랐다.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인간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종교계에서 난리가 난 것은 당연한 일. 바티칸은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근본적인 악”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비판과 “세계 불임부부들의 고민을 해결해 준 인류의 진보”라는 극찬이 엇갈렸다.

그 후로 28년이 흘렀다. 한국에선 매년 약 1만5000명의 시험관 아기가 태어난다고 한다. 루이스의 탄생 이후 세계적으로는 30만 명의 시험관 아기가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이냐, 윤리냐’라는 해묵은 논쟁을 뒤로하고 이제 시험관 아기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참, 이달 초 영국에서 반가운 뉴스가 전해졌다. 세계 첫 시험관 아기였던 루이스가 자연임신에 성공해 내년 1월 아기 엄마가 된다는 것이다.

2004년 결혼하면서 “체외수정에 의지하지 않고 아이를 갖겠다”고 했던 루이스는 “꿈이 이뤄졌다”며 감격스러워하고 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