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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파는 자영업자프랜차이즈, 안전지대 아니다

입력 | 2006-07-25 03:00:00

경기 의왕시에서 문구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하고 있는 최모 씨. 그는 휴일은 물론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가게 문을 열지만 벌이는 시원찮다고 했다. 무섭게 오르는 인건비와 임차료를 생각하면 도저히 쉴 엄두가 안 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의왕=홍진환 기자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사는 심모(39) 씨는 요즘 밤잠을 못 이룬다. 한 음식점 프랜차이즈와 가맹 계약을 하고 가맹비 700만 원을 입금했는데, 회사는 감감무소식이고 연락도 되지 않는다. 심 씨는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피눈물 나게 모은 돈인데 하루아침에 날릴까봐 걱정”이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경기 침체로 자영업이 빈사 상태에 빠지면서 비교적 창업이 손쉬운 프랜차이즈에서 새 일터를 찾으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한국프랜차이즈협회와 한국갤럽이 공동 조사한 ‘2005년 프랜차이즈 산업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7월 말 현재 국내 프랜차이즈는 모두 2211곳으로 2002년(1600곳)보다 39% 증가했다. 가맹 점포는 28만4182곳으로 2002년(11만9623곳)보다 약 2.4배로 늘었다.》

프랜차이즈는 본사로부터 사업 노하우 및 전문 기술 전수, 경영관리를 제공 받을 수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영업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건실한 프랜차이즈업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일부 부실 프랜차이즈 업체의 허위 과대광고에 속아 ‘돈 잃고, 마음도 망가지는’ 자영업자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업종이나 본사 경영능력에 따라 차이는 나지만 프랜차이즈가 반드시 ‘자영업의 안전지대’는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 부실 프랜차이즈에 울기도

대기업에 근무하다 퇴직한 김모(43) 씨는 올 초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냈다.

그러나 시작부터 일이 꼬였다. 처음 약속과 달리 프랜차이즈 본사는 마케팅과 홍보를 전혀 해 주지 않았고 이달 들어선 식재료 공급마저 끊었다. 김 씨는 문을 닫을 수 없어 직접 장을 보고 양념도 만들고 있다. “간판 교체 비용이 아까워 간판을 달고 있을 뿐 이젠 가맹점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2003년 말 컴퓨터수리 프랜차이즈의 가맹점을 낸 김모(36) 씨는 본사에서 로열티와 부품 값을 수시로 요구해 황당했다.

회사 측은 비용을 대지 않으면 컴퓨터 수리 주문이 접수되는 인터넷 게시판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김 씨는 작년 9월 가맹점 계약을 포기했다.

이 같은 프랜차이즈 가맹 피해 사례는 매년 적지 않은 건수로 발생하고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은 2000∼2005년에 매년 평균 50건 이상씩 프랜차이즈 가맹 관련 피해신고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일부 대기업 계열 프랜차이즈도 자영업자들의 원망을 사고 있다.

서울 강남지역에서 제과 프랜차이즈 점포를 운영하는 김모(55·여) 씨는 올 5월 재계약을 하면서 본사로부터 ‘점포 실내를 다시 꾸미라’는 요구를 받았다.

내키지 않았지만 본사 요구를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가맹점 신청자들이 줄을 섰기 때문이다.

김 씨는 실내공사비 3000만 원, 의자 탁자 교체비 2000만 원 등 모두 5000만 원을 썼다. 5000만 원은 그가 1년 6개월 동안 힘들여 번 순수입과 맞먹는 액수다.

○ ‘가맹점 사장님’은 빛 좋은 개살구

경기 의왕시에서 문구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하고 있는 최모(52) 씨는 한 달에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한다. 최 씨는 “무섭게 오르는 임차료와 인건비를 생각하면 쉴 틈이 없다”고 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창업하고 ‘어엿한’ 사장님이 됐지만 가맹점주의 노동 강도는 ‘살인적인’ 수준이다.

한국프랜차이즈협회 조사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지난해 한 달 평균 휴일은 1.6일에 그쳤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다는 곳도 절반을 훨씬 넘는 57.9%에 이르렀다.

하루 평균 영업 시간은 14시간이고, 17시간 이상 일하는 가맹점도 20.4%나 됐다.

하지만 이렇게 일해도 재료비 임대료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수익성은 되레 나빠지고 있다고 가맹점주들은 주장한다.○ 꾸준한 수익을 목표로

“프랜차이즈 사업은 생계 수단이지 황금 알을 낳는 대박 투자 상품이 아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프랜차이즈 사업 전문가들은 “부실 프랜차이즈의 유혹에 걸리는 자영업자들은 열이면 열 ‘대박 심리’에 사로잡혀 자신의 능력이나 자금 조달 범위를 넘어 무리하게 투자하는 사람들”이라고 입을 모은다.

2001년 문을 연 한 PC방 프랜차이즈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카드 대출을 알선해 주고 ‘창업 자본이 거의 필요 없다’고 홍보하면서 가맹점 신청자들을 유혹했다. 수개월 새 가맹점 700개가 모집됐고, 가맹비로만 수백억 원이 모였다.

하지만 대표가 가맹비 중 360억 원을 챙겨 해외로 도피했고, 솔깃한 유혹에 빠진 자영업자들은 가맹비 1000만 원을 고스란히 날려야 했다.

이상헌 창업경영연구소장은 “큰 수익보다 꾸준한 수익이 기대되는 업체를 고르는 게 프랜차이즈 창업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제과점 ‘뚜레쥬르’를 운영하는 CJ베이커리 김흥연 상무도 “프랜차이즈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좋은 프랜차이즈를 고를 수 있다”고 했다.

김 상무는 “가맹점 본사는 가맹 계약을 쉽게 해 주지 않을 정도로 가맹점 관리가 철저해야 하고, 가맹점주는 권리금이 무조건 낮은 점포보다 합리적인 권리금이 붙어 있는 점포를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탁소 자격증’ 같은 아이디어나 내고 있으니…정부 자영업 지원대책 허실

얼마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내년부터 서울 서대문구 신촌 대학가에서 세탁소를 운영할 생각인 채모(42) 씨. 최근 세탁소 운영에 필요한 정보를 모으다가 내년부터는 자격증을 따야 세탁소를 차릴 수 있다는 정부 방침을 듣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세탁소를 차린 사람들이 얼마나 전문 지식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단지 세탁업소가 많다는 이유로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억제하는 것은 우리 같은 퇴직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얘기 아닌가요?”

정부가 지난해 자영업 활성화 차원에서 마련한 ‘5·31 영세 자영업자 지원대책’은 현실과 동떨어진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예를 들어 내년부터 세탁업과 제과업, 미용업 등에 자격증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방침은 사실상 ‘없던 일’로 되고 있다.

당장 제과업 진입 규제는 지난해 무산된 바 있고, 세탁업은 아직도 자격증 도입의 실효성을 놓고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미용업은 ‘피부’ ‘헤어’ ‘네일 케어’ ‘메이크업’ 등 4개 부문에서 자격증을 두기로 했지만 실시 여부는 불투명하다.

노동부가 추진하는 ‘영세자영업자 훈련’ 프로그램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연간 매출액 4800만 원 이하의 자영업자를 재훈련시켜 임금 근로자로 전환시킨다는 계획이었지만, 올 5월 초까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자영업자는 170여 명에 불과했다. 이는 정부가 올해 목표로 세운 5000명의 3%에 그친 것.

올해부터 시작된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임의가입제도도 실적이 미미하다.

자영업자들이 연간 4만8000원을 고용보험료로 내고 직업능력 훈련을 받는 제도인데, 올 5월 초까지 가입자가 100여 명에 불과하다.

서울 중부시장을 관리하는 ㈜중부시장의 이영섭 총무과장은 “장사 그만두고 월급쟁이로 다시 태어나라는 것은 자영업자들의 기초적인 생리도 모르는 공무원들의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자영업자에 대한 한시적 대출 제도도 상황은 비슷하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소상공인 창업에 지원한 자금은 1인당 평균 2332만 원으로 2004년(2515만 원)에 비해 183만 원 줄었다. 은행들이 부실화 우려로 ‘대출 주머니’를 조인 탓이다.

황재성 기자(팀장) jsonhng@donga.com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최선욱(고려대 언론학부 4학년) 신동민(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 최용훈(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씨도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