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교육부총리가 국민대 교수 시절인 1987년 박사학위 논문심사를 맡았던 신모 씨(사망)의 논문을 표절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김 부총리는 어제 “내 논문이 신 씨의 박사학위 논문보다 먼저 발표됐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그러나 군색한 해명이다.
김 부총리는 신 씨의 연구 과정에 관여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신 씨가 데이터를 얻기 위해 서울 주민 400명을 상대로 실시한 면접조사 역시 자신이 틀을 짰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나눠 갖기’였다.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수행한 연구 데이터를 갖고 다른 사람이 학회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그래 놓고 김 부총리는 “내가 먼저 발표했으니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하고 있다. 대학교수로 20년 재직했다는 김 부총리에게 묻고 싶다. 이것이 학문적으로 떳떳한 일인가.
신 씨의 논문이 완성된 것은 1988년 1월이었고 김 부총리가 한국행정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한 것은 1987년 12월이었다. 불과 2개월 차이다. 하지만 신 씨의 논문은 박사학위 논문이므로 그전에 대략 완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신 씨 논문은 140쪽이고 김 부총리 논문은 15쪽에 불과하다. 제목과 내용도 흡사한 부분이 너무 많다. 더구나 제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차용하는 것은 학계의 고질적 관행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발표됐다는 설명만으론 석연치 않다.
학계에서 데이터 공유는 정확한 출처를 밝힐 때만 허용된다. 데이터를 인용하되 누가 어떻게 수행한 연구인지 밝혀야 한다. 아니면 논문의 공동저자로 명기해야 한다. 1988년 6월 김 부총리의 논문이 실린 학회지가 나올 무렵엔 신 씨의 논문이 완성돼 있었다. 그럼에도 김 부총리가 ‘데이터는 신 씨로부터 수집된 것’이라고만 쓴 것은 학문적, 도덕적으로 명백한 잘못이다.
이미 고인이 된 신 씨에게 반대편 입장을 듣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더라도 피해자가 가해자가 돼 고인의 명예가 실추돼선 안 된다. 김 부총리는 학계에 표절 여부를 가려 달라고 의뢰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학 개혁을 진두지휘하겠다고 나선 그가 그럴 만한 도덕성이 있느냐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