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남성들의 전유물로 인식돼온 미국 TV뉴스 메인 앵커의 자리를 여성 앵커들이 속속 점령하고 있다.
CBS 뉴스는 9월부터 여성앵커 케이티 커릭(49)이 혼자 진행한다. NBC 계열인 WRC의 저녁 5시 뉴스는 여성 앵커인 웬디 리커와 수전 키드 두 사람이 함께 진행하게 된다. TV 뉴스가 시작된 40년 전만 해도 여성 앵커란 '충격적인' 존재였지만 이제는 두 명의 공동 여성앵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
23일자 워싱턴포스트는 'TV 뉴스 진행과 취재 분야를 독차지해온 남성들이 사라져 가는 대신 여성들이 역할을 늘려가고 있다'며 이와 같은 흐름을 보도했다.
미국 라디오 TV 뉴스 제작자협회(RTND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국의 TV 뉴스 앵커 중 여성이 전체의 57%로 절반을 넘어섰다. TV 뉴스 기자 중 58%, 뉴스 작가의 56%, 뉴스 PD의 66%도 여성이 맡고 있다.
최근 폭스뉴스가 운영하는 수도권 방송 WTTG-폭스5의 채용 과정에서는 여성 지원자가 남성의 3배에 달했다. ABC 뉴스의 워싱턴 지역방송인 WJLA의 경우도 마찬가지. 향후 언론분야로 진출할 대학 신문방송학과 졸업생의 3분의 2가 여성인 점을 감안할 때 이런 여초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라는 배경 외에 TV뉴스 산업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 변화도 여성 앵커의 강세를 가져온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TV뉴스 산업이 월급도 적고 미래 자기개발 가능성도 높지 않은 '저성장' 분야로 여겨지면서 남성들이 더 소득이 많은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는 것.
물론 주요 방송국의 경우 연봉이 20만 달러를 넘어서지만 이같은 급여를 받는 앵커의 수는 제한돼 있다. 나머지 상당수는 2만 달러의 연봉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에서 "차라리 군대에 가서 받는 수입이 더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여성들의 역할이 늘어나면서 뉴스의 성격이나 초점이 다양화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쟁을 비롯한 사회, 정치 분야의 딱딱한 이슈가 줄어든 대신 성차별, 낙태, 육아, 태교와 산후우울증처럼 예전에 소외되기 일쑤였던 분야의 뉴스들은 늘어났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ABC가 '월드뉴스 투나잇'의 메인 앵커를 여성으로 기용한 뒤 이런 주제들을 CBS나 NBC 뉴스보다 더 많이 보도했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언론분야 컨설팅업체 AR&D의 제리 검버트 대표는 "이 추세대로라면 TV뉴스가 다루는 주제가 여성들의 관점에 더욱 치우치는 '역 부작용'을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