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80%를 만족시키고 20%를 배제하는 정치 전략은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과 교육정책에서 두드러진다. 노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있다는 이 두 분야는 역설적으로 현 정부의 지지도를 추락시킨 ‘주범’으로 꼽힌다. 정책 결정자들은 “다수가 원하는 대로 정책을 만들었는데 왜 민심이 등을 돌릴까”라며 억울해할 법하다.
김진표 전임 교육부총리는 5·31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국민의 80%가 평준화정책을 찬성한다”고 말했다. 교육정책이 선거 참패의 원인으로 지적받자 내부적으로 여론조사를 해 본 모양이다. 김 전 부총리는 지난주 퇴임식에서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평준화정책은 깨지 못할 것”이라고 다시 평준화를 거론했다. ‘80% 정책’에 대한 집착이 느껴진다.
부동산정책에서 아파트 ‘세금 폭탄’은 국민의 90%에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 강남의 재건축 억제 조치는 해당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에게만 불이익이 돌아갈 뿐이라는 것이다. 외국어고 지원 지역제한 정책은 외국어고에 입학하거나 다니는 집단을 상위 20%로 설정하고 만든 것이다. 나머지 80%는 평준화를 지지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정책이다.
서울의 국제중학교 신설에 전임과 현임 교육부총리가 같이 반대하는 것은 ‘귀족학교’로 보기 때문이다. 부자에 대한 거부감을 계산한 대응이다. 2008학년도 ‘내신 입시’는 공부 잘하는 동네의 학생들이 명문대로 향하는 길을 좁히거나 막아 놓았다. 정책 입안자들은 다른 동네의 학부모들이 반가워할 거라는 기대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특정 집단에 괴롭힘을 가할 때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갖는 복잡한 심리를 정부는 모르는 듯하다. 누가 내게 와서 특정인을 헐뜯을 때 나는 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기보다는 헐뜯는 행위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보인다는 게 심리학의 정설이다. 정부는 배 아파하는 정서만 생각했지, 다양한 인간심리는 고려하지 못했다.
현 정부의 정책은 감정적이고 편협하다. 서울의 국제중학교는 두 곳의 학교에서 각각 64명의 학생을 뽑겠다고 설립인가 신청을 했다. 서울의 중학교 한 학년 학생은 12만 명이며 한 해 서울에서 조기유학을 떠나는 학생만 7000명이 넘는다. 해외유학 수요를 줄이고 국제화교육도 하겠다며 두 학교 합쳐 128명을 뽑겠다는데 결사반대하는 것은 정권을 쥔 자의 옹졸한 심술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전국 외국어고의 정원은 31개교에 8200명이다. 학교마다 다른 시도에서 온 학생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 정도를 놓고 정부가 나서 응시지역을 제한하는 것은 실효(實效)가 없다. 이번 제한 조치는 ‘우리가 80%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는 선전술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협량(狹量)이 국민을 짜증나게 하는 것이다.
더 큰 잘못은 사람들에게서 ‘꿈’을 빼앗은 것이다. 80%도 늘 20%를 꿈꾼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판교신도시는 원래 중대형 아파트를 집중 공급해 서울 강남의 수요를 대체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실제 분양에서 전용면적 85m²를 초과하는 중대형 아파트는 전체 2만5000채 가운데 7433채로 축소돼 버렸다. 중소형 아파트 위주로 변질된 것이다.
강남 집값이 비싼 것은 좋은 동네에서 큰 평수에 살고픈 욕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심정적으로 싫더라도 좋은 동네에 중대형 아파트 공급을 집중해야 하는데도 그럴 만한 배짱과 비전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강남 집값은 더 오르고 꿈은 점점 멀어져 간다.
지난 월드컵 거리응원에서도 다시 확인됐지만 사람들은 가난의 기억에서 벗어나 ‘자랑스러운 한국’을 보고 싶어 한다. 그 속에서 희망과 꿈을 이뤄 나가길 원한다. 20%를 공격하는 정치는 절대 이런 나라를 만들 수 없거니와 국민이 반길 리 없다.
홍찬식논설위원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