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은 그녀 혼자만으로도 입전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굳이 아들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된다. 정서적 감응력이 풍부한,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닌, 현실적인 구도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전략적으로 추구할 줄 알았던, 예민하면서도 다정다감했던, 그림에 있어 천재를 발휘했던 그녀를 그녀로 존재하게 하라.―본문 중에서》
참으로 나지막한 소리다. 이 책 속에 담긴 글들은 조선 여성의 이야기를 차분차분, 조용조용하게 전한다. 조선의 여성이 얼마나 위대했는가를 드러내지도 않고, 얼마나 억울하게 살았나를 강조하지도 않는다. 또 ‘저항’을 발견하려고 애쓰지도 않고 여성의 역사를 다시 쓴다고 큰소리치지도 않는다. 그들 삶의 갈피들과 숨소리를 살려내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배우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담았을 뿐이다. 우리 할머니들이 그 시절들을 살아 내면서 꾹꾹 눌러 담은 삶의 노하우가 담긴 단지 뚜껑을 가만히 열고 들여다보는 느낌. 퀴퀴하게 썩었을 줄 알았는데, 곰팡이가 슨 윗부분을 들춰내니 웬걸 맑게 내 얼굴이 비치는 까만 간장이 담겨 있다.
책의 표지가 흥미롭다. 제목 아래 저자의 이름이 있을 자리에 ‘신사임당, 송덕봉, 허난설헌, 이옥봉, 안동장씨, 김호연재, 임윤지당, 김만덕, 김삼의당, 풍양조씨, 강정일당, 김금원, 바우덕이, 윤희순’이라는 이름들이 또박또박 나열되어 있다. 그들에 대한 책이지만, 마치 그들이 쓴 책처럼 보인다. 어쩌면 저자들은 서술 대상과 서술하는 자신들 사이에 혼연일체가 된 것 같은, 그 무엇을 겪은 것 같다. “만나고 싸우고 화해하고 반하고 연애한 기록”이라는 필자들의 고백이 꾸미는 말만은 아니다.
이 책에는 어려운 역사 이론, 여성사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다. 역사적인 인물을 다루면서도 ‘객관적 사실’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문학을 전공한 저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소설을 쓰듯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해 준다. 이미 잘 알려진 신사임당, 허난설헌에 대해서는 ‘현모양처’나 ‘비운의 시인’과 같은 오래된 덧칠을 벗겨 낸다. 풍양조씨, 김금원, 바우덕이와 같은 조금은 낯선 이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삶을 새롭게 드러낸다. 누군가의 부인이지만 결코 남편 앞에 다만 숨죽이며 살지 않았고, 철학을 하고 문학을 하고 거리의 예술가로서 재능을 펼치고, 여행을 다니고, 의병운동에 투신하고, 또 자기 삶의 역사가이자 기획자이며 욕망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여성들의 흔적이 옛날이야기처럼 펼쳐진다.
다 읽은 뒤에도 어쩐지 놓지 못하고 자꾸만 아무 데나 펼쳐 들고 다시 읽게 되는 책이 있다. 글쓴이가 아주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저자뿐 아니라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 여인들도 못다 한 말이 많은 듯하다. 그들은 오래 못 만난 언니들처럼, 조선의 여신들처럼 나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그 여신들 중 나는 누구랑 제일 닮았나. 혼자서 견주어 본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난설헌, 옥봉한테 절절하더니 오늘 밤은 어쩐지 시인 호연재한테 자꾸 마음이 간다. “취한 뒤에는 건곤이 드넓어/ 마음을 열매 만사가 태평하도다/ 고요히 돗자리 위에 누웠으니/ 잠시 세정을 잊고 즐길 뿐.”
정지영 이화여대 교수·여성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