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천 교수
김웅태 신부
김원배 목사
《믿음이냐? 선행이냐? 세계감리교협의회가 최근 ‘의화(義化)교리에 관한 공동선언문’(JDDJ)에 합의함으로써 그리스도교 간 일치 운동에 큰 획을 긋게 됐다. 이 공동선언문은 인간 구원의 조건을 다룬 ‘의화교리’를 둘러싸고 500여 년간 대립해온 가톨릭과 루터교가 1999년 합의한 것으로, 대표적인 개신교단 중 하나인 감리교가 7년 만에 이에 합의함으로써 교회일치운동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회 위원인 김웅태 신부, 서울 감리교신학대 박종천 교수,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총무 겸 기독교장로회 총회교육원장인 김원배 목사에게 그 의의를 들었다.》
○ 믿음-실천으로 윤리문제 해결
가톨릭과 대표적인 개신교단 간의 교리합의 선언은 기독교 일치운동에 큰 희망을 던져주는 것이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1703∼1791)는 루터교와 가톨릭의 의화 교리를 아우르는 매우 독특한 신학사상을 갖고 있었다.
웨슬리는 믿음을 통한 ‘칭의(의화·Justification)’에서 나아가, 삶 속에서 실천을 통한 ‘성화(聖化)’로 구원이 완성된다고 했다. 즉,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는 교리는 루터교와 공유하고, 선행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가톨릭과 뜻을 같이 해왔다. 만일 구원에 믿음만 중요시하고 아무렇게나 행동한다면 심각한 윤리문제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중도적 신학 때문에 이번 공동선언에 흔쾌히 참여할 수 있었다.
○ 올바른 삶의 중요성 포함
의화교리에 관한 공동선언은 ‘인간의 구원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며, 이를 위해서는 믿음이 필수적인 것이다. 또한 믿는 사람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선행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구원에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필수요소이지만, 신앙인으로서의 지속적인 선행 실천의 중요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이 아닌 신자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는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자기 탓이 아닌 이유(지역이나 시대)로 복음을 접하지 못한 이들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규정했다. 공의회 문헌은 만일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를 진실하게 믿으면서, 올바른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하느님께서는 당신만이 아는 방법으로 구원으로 이끄는 길을 열어두셨다고 표현돼 있다.
○ 믿음과 선행 모두 소중한 전통
교회사 전통 안에는 크게 두 개의 흐름이 있다. 첫 번째 흐름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워졌다’는 예수님의 복음처럼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노력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희망이 돼 주었다. 두 번째는 사도 바울에 이어 어거스틴, 루터, 칼뱅으로 이어지는 ‘믿음으로 이뤄지는 구원’을 강조하는 것으로 종교개혁을 통해 시민계급, 중산층 계급에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믿음과 실천의 전통은 둘 다 소중하게 이어나가야 한다.
의화교리를 주장한 루터도 나중에는 수도사가 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고행(행위, 실천)의 길을 갔다. 의로운 사람이 단순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부단히 새로워지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의화교리 논쟁:
‘의화론’(개신교에서는 ‘칭의론·稱義論’으로 말함) 논쟁은 “믿음(신앙)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루터교의 주장이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함께 선행을 실천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충돌하면서 빚어진 것이다. 16세기 초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마틴 루터의 반발을 계기로 벌어진 이 논쟁은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가 갈라서며 종교 전쟁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루터교와 가톨릭은 1967년부터 32년간의 대화 끝에 1999년 10월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하나님)의 자유로운 선물이며, 이는 선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은총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오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은 인간에게 선행할 힘을 주시고 또 그렇게 하도록 부르신다”는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