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심장부 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 광장 남쪽에 위치한 ‘마오주시(毛主席)기념당’. 중국인은 마오쩌둥(毛澤東)을 ‘마오주시’라 부른다. 생전에 당 주석(34년)과 국가주석(11년), 인민해방군 주석(41년) 등 모두 86년간 주석을 지낸 그에게 붙여진 별호로 그를 높여 부르는 예(禮)의 표시이기도 하다.
기념당 주변은 참배객들로 늘 장사진을 이룬다. 최근엔 관람객 줄이 인민영웅기념비를 지나 기념당 건물 뒤편까지 2km로 늘었다.
헌화와 참배까지 걸리는 시간은 3분. 마오의 시신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단 30초도 안 된다. 기념당 주변은 30도를 넘는 날씨에 광장의 열기까지 더해져 체감온도가 40도를 웃돈다. 그러나 2시간 이상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줄을 벗어나는 사람은 없다.
베이징의 가장 큰 골동품 시장인 차오양(朝陽) 구의 판자위안(潘家園). 마오의 저서나 사진, 기념배지, 액자를 파는 전문상점이 30곳에 이른다.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매년 가격이 20∼30% 오른다. 1년에 2, 3배씩 오르는 것도 있다. 온라인 경매 사이트에선 마오와 부인 장칭(江靑)이 함께 찍은 빛바랜 사진이 100만 위안(약 1억1941만 원)을 호가하기도 했다. 서점에서는 마오의 책이나 사진, 그림이 불티나게 팔린다.
왜 이럴까? 대답은 세대에 따라 크게 다르다.
“(마오가) 살았을 때 직접 보지 못해 한이었는데 오늘 시신이라도 봤으니 소원을 풀었습니다.”
“존경하느냐고요? 천만에요. 왜 뙤약볕에서 2시간씩 기다렸느냐고요? 아이, 유명한 관광지잖아요. 한번은 봐야죠.”
헤이룽장(黑龍江) 성 하얼빈(哈爾濱)에서 왔다는 70대 노부부의 답변(앞)과 장쑤(江蘇) 성 난징(南京)에서 온 17세 고등학생의 대답은 천양지차다.
골동품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40대 이상은 마오의 ‘팬’으로서 사진이나 배지를 사지만 젊은 사람은 그저 ‘투자대상’으로 여길 뿐이다. 돈에 눈뜬 새 세대가 10년 새 1000배까지 오르는 마오의 휘장이나 그림을 놓칠 리 없다.
젊은이에게 마오를 존경하거나 숭배하느냐고 물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마오의 인기는 저우언라이(周恩來)나 덩샤오핑(鄧小平)보다도 한참 뒤처진다.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줄기차게 배운 ‘마오쩌둥 사상’이 어디 갔나 싶을 정도다.
40대 이상 역시 항일 및 건국과정을 높이 평가하지 건국 뒤 경제건설에 대해서는 혀를 찬다. 문화대혁명 시절이 “살기 더 편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살기 더 좋았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갈수록 마오에게 매달리고 싶어 하는 눈치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올해 춘제(春節·중국 설) 때 상징적인 행사를 치렀다. 바로 마오의 혁명 근거지 옌안(延安)에서의 지난했던 항일시절을 회고하며 혁명 정신을 강조했다.
2001년 6월 방영을 시작한 24부작 ‘장정(長征)’은 올해 들어서도 지방방송국의 전파를 타고 있다. 다음 달 3일엔 중국교육종합채널이 전국 청소년을 상대로 방영한다.
후 주석은 25일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단체학습 자리에서 “중국혁명사를 가슴에 새기자”고 역설했다.
그러나 마오 사상 및 혁명 정신을 강조한다고 극심해진 빈부 격차와 만연한 부패가 치유될 리 없다. 지식인 가운데는 후 주석이 그토록 강조하는 ‘조화로운 사회’나 ‘사회주의 영욕관’을 문제 회피를 위한 당의정으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후 주석은 ‘흘러간 마오’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남의 얘기만은 아닌 듯하다.
하종대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