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이 26일 인사차 서울 종로구 혜화동성당을 찾아온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정국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김수환 추기경이 26일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하며 한나라당이 정권 교체를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김 추기경은 이날 인사차 서울 혜화동성당 집무실을 찾은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에게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정권 교체가 잘 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강 대표와의 비공개 면담이 시작되자 먼저 “국민이 믿을 곳은 한나라당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잘해 달라”며 이같이 말했다고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이 전했다.
김 추기경은 면담 말미에는 “(한나라당에) 대통령 후보가 여러 명 있어 걱정된다”며 재차 “누가 되느냐가 아니라 정권 교체가 중요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한나라당이 대선후보 선출을 놓고 서로 다투지 말고 정권 교체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 추기경은 ‘한국 장관이 미국의 정책이 실패했다고 말하면 안 되느냐’며 장관들에게 국회에서 적극 대응하라고 주문한 노 대통령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김 추기경은 “임기 말에 이런 말을 해서 대통령의 인기가 높아질지는 모르나 국가에 이익이 되는지는 의문”이라며 “미국에 대해 욕을 할 수는 있지만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국가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또 “(노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걱정이 많이 된다”며 “이종석 장관의 말을 옹호하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아슬아슬하다”고 걱정했다.
김 추기경은 교황청 ‘그리스도인 일치촉진평의회’ 의장인 발터 카스퍼 추기경과 함께 24일 노 대통령을 예방했을 때 무슨 얘기를 나눴느냐는 질문에 “한마디 말도 안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카스퍼 추기경과 자신이 나눈 얘기를 소개했다. 카스퍼 추기경이 “미국 없이 서독이 발전하고 통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며 미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 김 추기경은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미국이 중요하다는 것을) 국민이 강하게 공감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유 대변인은 김 추기경의 발언을 기자들에게 자세히 소개한 뒤 ‘정권 교체’ 발언이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브리핑을 자청해 “김 추기경이 정권 교체가 돼야 한다고 한 것이 아니라 과거 한나라당에서 대선후보들이 경선에 불복해 정권 창출을 못한 점을 두고 한 충고였다”고 해명했다. 그는 “김 추기경이 한나라당을 지지했다기보다는 충고를 한 것”이라며 “김 추기경이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 발언을 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고 덧붙였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실장 허영엽 신부는 “취임 인사차 찾아온 강 대표에게 김 추기경께서 덕담 수준으로 한 얘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면서 비공개로 이뤄진 면담 내용이 언론에 공개된 것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