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는 잘 웃고 얘기도 잘하는 지원(6·서울 양천구 목동)이가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요’라는 가정통신문을 받아왔다.
걱정이다. 주변에 물어보니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고치지 못 하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단다.
그러고 보니 지원이는 놀이터에서도 낯선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웃 어른을 보면 아빠 뒤로 숨기에 바빴다. 그런데 집에서는 ‘언어 천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을 잘한다. 엄마 아빠를 웃기기까지 한다.
아이의 사회성을 키워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름 방학이 끝나 친구들과 재회하기 전까지.
○ 생활 속의 실수들
“지원이가 그림을 참 잘 그렸네. 커서 화가해도 되겠는걸.”
“그럼 나는 의사도 되고 화가도 돼야∼지.”
기분이 좋아진 지원이가 생긋 웃는다.
칭찬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다. 지원이 부모는 아이가 뭔가를 시도할 때마다 잘한 것을 칭찬하면서 무의식중에 의사나 화가 같은 구체적인 직업을 얘기했다.
아동상담 30년 경력의 황영희(52·상담심리전문가) 정인아동청소년상담센터 소장은 지원이의 생활상을 들은 뒤 “칭찬을 하면서 은연중에 너무 높은 목표를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부모는 농담으로 하는 얘기라도 아이들은 ‘반드시 의사나 화가가 돼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지원이는 엄마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선 “나보다 엄마가 더 잘한다”며 울곤 한다. 자신이 화가가 돼야 하는데 엄마가 그림을 더 잘 그려 좌절을 느끼는 것이다.
황 소장이 이런 문제를 지적한 것은 사회성은 아이들의 자신감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생활 속에서 아이들의 사회성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은 더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났을 때 부모가 작은 목소리로 겨우 인사를 나누고는 아이에게 “‘안녕하세요’ 해야지”라고 말하는 경우다. 부모가 먼저 밝고 활기차게 인사해야 아이가 머뭇거리지 않는다.
집에서는 말도 많고 논리 정연한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말도 잘 못 붙이는 사례가 종종 있다. 이는 부모가 유쾌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대화가 즐겁다는 것을 모범으로 보여 줘야 한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과 다섯 살배기 아들을 둔 이선주(36·로레알 ‘키엘’ 브랜드매니저) 씨는 작은 실천으로 효과를 보고 있다. 이웃이나 친구, 친지들과의 모임을 일부러 자기 집에서 여는 것이다. 부모가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아이들은 사교를 배운다.
○ ‘마음의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
20일 경기 안양시 평촌신도시의 한결아동발달센터. ‘친구 사귀기’ 프로그램에 초등학교 2∼3학년 어린이 4명이 참가하고 있었다. 한 아이가 “피자 돼지야”라는 거친 말을 쓰자 교사가 “‘너는 피자를 무척 좋아하는구나’라고 하면 어떨까”라며 친구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말투를 유도했다.
이런 전문기관에서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의 사회성을 길러 준다. 감정카드 빙고게임을 통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추측해 보고, 말하기 카드게임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식이다.
어른이 아닌 만큼 사교 기술의 일반원칙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마음의 힘’, 즉 자신감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둔다. 강은숙 한결아동발달센터 소장은 “아이들이 자아의식과 자신감을 가지면 사회성은 저절로 길러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마음의 힘’을 길러 주는 원칙은 무엇일까. 다음은 황 소장의 조언.
우선 부모가 아이의 능력에 맞춰 적절한 수준의 기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도한 기대는 아이에게 좌절을 맛보게 하는 씨앗이 될 수 있다. 열 개의 계단을 한 계단씩 올라가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첫 번째 계단에 있는 아이를 보고 열 번째 계단 위에 서서 빨리 올라오라고 재촉하면 아이의 마음은 한없이 쪼그라든다.
아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항상 염두에 두고 그 범위를 넓혀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컨대 수영장에 갈 때 승용차를 이용하기보다는 부모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는 편이 좋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몇 번 버스를 타야 목적지에 갈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스스로 할 수 있는 활동을 늘리면 아이들의 마음은 그만큼 자란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