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하기만 했던 백화점 구두매장이 고객의 발길을 붙잡기 위해 변신하고 있다. 은은한 조명에 S라인 동선, 둥근 진열대를 도입하고(위), 옷 매장 앞에 ‘매칭 숍’ 형태의 구두 매장을 별도로 마련한 곳도 있다. 사진 제공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시간이 나면 백화점에서 ‘윈도쇼핑(window shopping)’을 즐기는 권진희(30·여) 씨. 그는 요즘 백화점을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꼭 들르는 데가 있다. 바로 구두매장이다. “은은한 조명과 둥근 진열대 등 브랜드마다 특색 있게 꾸며진 매장 인테리어 자체가 볼거리가 됐어요.” 주부 김미정(42) 씨는 구두매장을 즐겨 찾는 쇼핑 마니아. 김 씨는 예전에는 흰 셔츠에 까만 양복바지를 차려 입은 뻣뻣한 남자 직원들이 매장에 서 있어 부담을 느꼈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남자 직원도 분홍색이나 꽃무늬 셔츠를 입고 있다. 딱딱하던 백화점 구두매장이 확 바뀌고 있다. 고객의 지갑을 열기 위해 매장 구성에서부터 인테리어, 조명, 동선이 달라지고 있다. 남자 위주의 매장 직원도 여자로 바뀌는 추세다. 》
○ ‘윈도쇼퍼’를 잡아라
현대백화점 서울 천호점 구두 매장.
디자인 전문 컨설팅사에 의뢰해 10여 차례 설계를 변경했고 1년간 작업 끝에 지난달 새로 문을 열었다.
먼저 1.35m 높이였던 브랜드 간의 담이 2m로 높아졌다. 옆 매장 직원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쇼핑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구두가 사람 키보다 높게 전시돼 있어 멀리서도 보인다.
구두매장의 획일적인 조명도 공간별로 색상과 밝기를 달리 했다. 고객이 지나다니는 통로를 어둡게 하는 대신 진열대에는 부분 조명을 써 구두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네모반듯한 직사각형 동선 대신 ‘S라인’의 동선을 도입하고, 둥근 집기를 많이 사용한 것도 눈길을 끈다. 편안한 느낌을 주면서 고객이 매장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무르게 하기 위해서다.
이순순 현대백화점 천호점 차장은 “매장이 편안해 보여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가 구두를 사는 사람이 늘어나 점포 단장 한 달 만에 매출이 15%나 늘었다”고 말했다.
○ 유형별 차등화 전략만이 살길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남성 구두매장에는 신사화와 운동화가 브랜드 구분 없이 한데 섞여 있다. 쇼핑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귀차니스트(쇼핑을 귀찮아하는 사람)’ 남성 고객을 붙잡기 위해서다.
롯데백화점은 기존 여성 구두매장과는 별도로 여성 의류매장 에스컬레이터 앞에 구두 전문 디자이너 브랜드 숍인 ‘더 슈’와 ‘슈콤마보니’를 새로 열었다. 옷을 사고 나서 자연스럽게 구두를 사도록 유인하기 위한 전략이다.
오용석 롯데백화점 여성 캐주얼 매입팀 바이어는 “구두 전문 디자이너 브랜드를 옷 매장 앞에 내니까 옷 사러 왔다가 들르는 고객이 많다”고 귀띔했다.
○ 전문가 배치하고 ‘꽃미남’까지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선 구두 전문가 ‘슈피터’를 매장에 배치해 고객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당장 유행하는 구두를 권하기보다는 고객의 발 모양과 건강을 고려해 구두를 골라 주는 차별화 전략이다.
현대백화점 서울 목동점과 압구정점의 구두매장 직원들은 딱딱한 정장 대신 꽃무늬 남방이나 원색의 와이셔츠 등 캐주얼을 즐겨 입는다. 이 백화점 김선형 구두바이어는 “매장 직원의 복장 변화는 고객에게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준다”며 “복장이 바뀌면서 고객이 15%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금강제화는 현대백화점 압구정점과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 등 17개 매장 직원이 모두 여성이다. 이 회사 압구정점 김현정 매니저는 “여자 직원이 구두를 신겨 주고 발을 만져도 여성 고객들이라서 불편한 느낌을 갖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