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통부-IT CEO들이 만난 까닭
27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노준형 정보통신부 장관 주재로 삼성전자 이기태 정보통신총괄 사장, LG전자 박문화 정보통신사업본부장(사장), 팬택 김일중 사장 등 휴대전화 제조 업계 최고경영자(CEO) 13명이 참석하는 조찬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는 최근 세계 시장 점유율 하락과 이익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휴대전화업계의 애로 사항을 듣고 발전방안을 논의한다는 취지로 개최됐다. 정통부가 휴대전화업계 CEO들과 이런 식의 모임을 한 것은 처음이다.
관련업계 대표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려움을 호소했다. “국내 부품 사업이 활성화되지 않아 업계 전체가 어려움이 있다”, “내수 시장이 활성화되도록 정부가 지원해 달라”, “중소기업은 비싼 장비를 마련할 수 없어 제품 개발이 어렵다”는 등의 말이 나왔다. 휴대전화 등 국내 정보기술(IT)산업의 위기상황을 실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 “심상찮다” IT산업 위기론 떠돌아
지난해 IT산업 수출액은 825억 달러(78조3750억 원)로 전체 수출의 30%가 넘었다. 10대 수출 품목에도 반도체(1위), 휴대전화(3위), 가전(9위), PC(10위) 등 IT 상품이 4가지나 들어 있다. 따라서 IT산업의 위기는 바로 한국 경제의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IT 경기 침체의 심각성은 대표적인 수출 상품인 휴대전화에서 잘 드러난다. 20%에 가까웠던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영업이익률은 올해 2분기(4∼6월) 9.5%로 반 토막이 났다. LG전자의 휴대전화 사업은 같은 기간 30억 원의 적자를 내며 세계 4위에서 5위로 밀려났다.
한국 업체들이 세계 정상권을 차지하고 있는 액정표시장치(LCD) 패널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 LG필립스LCD는 올해 상반기(1∼6월) 사상 최악인 3220억 원의 적자를 냈다.
중소기업으로 내려가면 사정은 더 심각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휴대전화 업체 VK가 부도로 무너지면서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현재 셋톱박스와 디지털 TV 업계에는 구조조정과 관련한 ‘위기론’이 나돌고 있다”고 말했다.
○ 제조업 중심의 구조적 문제가 원인
한국 IT산업이 위기에 처한 원인은 우선 경제적 환경이 나빠진 데 있다. 국내 IT 시장은 2003년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부터 세계 IT 경기도 하락세에 들어섰다. 게다가 원화가치 강세(원화환율 하락)로 가격경쟁력이 약화됐고, 해외 업체들과의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IT산업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한국투자증권 민후식 연구위원은 “반도체산업 등 제조업은 환경 변화에 빨리 적응하기 어려워 경기가 조금만 변해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조업에 비해 소프트웨어산업이 취약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나 SAP 같은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제조업의 발전을 이끄는 동시에 경기 변화의 영향도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다.
○ 신제품과 신서비스… 창조업으로 가자
전문가들은 이제는 단순 제조업을 벗어나 질적인 변화를 꾀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LG경제연구원 나준호 책임연구원은 “제조업에서 창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창조업’이란 새로운 아이디어와 상상력으로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 그는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윈도를 만든 MS나 아이팟을 만든 애플 같은 기업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동국대 경영학과 여준상 교수는 “이동통신 부가서비스나 인터넷 사이트 등 ‘국내용’ 상품을 해외 시장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