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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실버가 뜬다]자녀동거 NO, 상속도 NO

입력 | 2006-07-28 03:00:00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자식에게 신세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부 이희자(66·서울 관악구 신림동) 씨는 나이가 예순 줄에 접어들면서 남편(66)과 다짐한 게 있다. 건강할 때까지 열심히 벌어서 쓰면서 살자는 것이다. 조그만 가게를 하는 남편이 일을 그만두면 부부가 시설 좋은 실버타운에 들어가는 게 꿈이다. “딸아이가 하나 있지만 어차피 시집가서 따로 사니까 ‘쓸 만큼 쓰자’는 생각이에요. 재산 남겨주고 뭐 그런 거 없어요.” 부부는 주말마다 여행을 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유명 사찰이 있다는 전국의 산 가운데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란다. 굳이 해외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다는 게 이 씨의 생각이다. 그는 “일단 벗어나면 새롭다”며 “지방의 맛있다는 식당도 잘 찾아다닌다”고 말했다.》

자녀로부터 독립하자. 이것이 뉴실버(New Silver)세대가 전통적인 노인세대와 달라진 점이다.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일도 죽기 전에는 ‘노(No)’다.

본보 취재팀이 신한은행과 공동으로 전국 59∼67세(1939∼47년생)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고령자 의식을 조사한 결과 이런 경향이 뚜렷이 나타났다.

○ 자녀와 함께 살기 싫어

뉴실버세대는 자녀가 결혼할 때까지만 뒷바라지를 하고 이후에는 부부 중심의 삶을 원한다.

물론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는 기존 세대와 마찬가지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60.0%)는 응답이 많았다.

가장 큰 관심사는 건강을 유지하는 것(60.4%)이지만 두 번째는 여전히 자식의 교육과 결혼(13.0%)이다. 자식의 교육이나 결혼을 위한 비용을 기꺼이 지출한다는 응답도 56.4%에 이른다.

하지만 자식이 결혼할 때까지만이다. 절반이 넘는 응답자(51.0%)가 자식이 결혼한 후에는 함께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심지어 배우자가 사망한 후에도(32.4%), 자신의 건강이 나빠져도(18.6%) 따로 살겠다고 대답했다.

은퇴 후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 일하는 신모(60) 씨는 지금 25, 27세인 두 아들이 결혼을 해도 함께 살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의 아들들도 아버지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다고 했다.

“며느리 있으면 속옷 바람으로 집에서 왔다 갔다 하기도 불편하고…. 능력이 되면 따로 살아야죠. 친구들을 봐도 처음에는 같이 살다가 결국엔 다 분가합디다. 자식이나 부모나 서로에게 의지를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봐요.”

○ 귀여운 손자도 1시간이면 충분

뉴실버세대는 손자나 손녀를 돌보는 것에 모든 것을 쏟지 않는다.

가끔 보면서 예뻐하기만 하고 전적으로 돌보기는 싫다는 응답이 55.0%로 절반을 넘었다.

최모(67·무직) 씨는 손자손녀가 세 명이다. 한 달에 한두 번 결혼한 아들과 딸이 찾아온다. 하지만 보통 때는 무척 보고 싶었던 손자손녀들도 딱 1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집에 와서 시끄럽게 하거나 울고 그러면 귀찮아져요. 처음에 와서 얼굴 봤을 때가 제일 좋고 시간이 좀 지나면 어서 갔으면 하죠.”

그는 자녀들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손자손녀들을 오래 봐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은 “자식과 함께 살지 않고 손자도 전적으로 돌보지 않는 현상은 뉴실버세대가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뜻”이라며 “이런 태도를 이기적이라고만 볼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돈이 효자를 만든다”

자영업을 하는 박모(60·여) 씨는 6남매 중 막내다. 현재 80대인 언니들에게 누누이 들어온 말이 있다. 경제권은 끝까지 놓지 말라는 것이다.

“저도 1남 2녀의 엄마로서 기본적으로 해 줘야 할 건 해 주지만 스스로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은 끝까지 지키려고 해요. ‘돈이 효자를 만든다’는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인 것 같아요.”

3명의 자녀 중 두 명을 결혼시킨 박 씨는 노후를 생각하면 자꾸 계산적이 된다고 털어 놓았다. 자기 짝을 찾아 떠난 자식이나 국가에 자신의 노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뉴실버세대는 자녀에 대한 재산 상속에 있어서는 ‘깍쟁이’에 속한다.

3명 가운데 2명(65.0%)은 자신이 죽기 전에는 재산 상속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상속을 하겠다는 답은 10.8%뿐이었다.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기보다 사회에 환원하는 데 대해서는 50.6%가 찬성했다.

이번 조사 실무를 맡은 리서치회사 에이엔알(ANR)의 이문한 연구부장은 “상속을 전혀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쓸 만큼 쓰고 남으면 상속을 하겠다’는 의식이 엿보인다”며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응답이 많아진 것도 뉴실버세대가 예전 어르신들과 달라진 점”이라고 분석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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