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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뺀 8자회담]中외무, 옆자리 백남순에 눈길 한번 안줘

입력 | 2006-07-28 03:00:00


28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8자회담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문에 이어 또 한번 국제사회가 단합해 북한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라는 의미가 있다.

▽8자회담 참가국의 의중=북한에 우호적이었던 중국이 유엔 안보리 결의문에 찬성한 데 이어 8자회담 개최에도 동의한 게 북한으로서는 특히 큰 부담이다.

27일 쿠알라룸푸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압둘라 바다위 말레이시아 총리 예방 행사에서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은 백남순 북한 외무상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백 외무상은 바로 옆자리에 앉은 리 부장을 계속 쳐다봤지만 리 부장은 외면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24개국 외교장관 중 백 외무상에게 인사를 건넨 외교장관은 5명도 안 될 정도로 백 외무상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이에 따라 8자회담 참가국들 사이에선 미국이 회담에서 북한을 비난하고 대북 압박 조치를 논의하자고 밀어붙여도 중국이 강하게 제동을 걸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발사 문제를 ‘동북아의 안보 문제’로 규정하고 대북 압박 조치에 아시아 국가 다수를 동참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26일 “(6자 외교장관 회담에) 북한이 참석을 거부할 경우 동북아 안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다자간 회의를 열 것”이라며 8자회담을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게다가 북한 대포동2호 미사일의 사거리 안에 들어가는 캐나다와 호주도 회담에서 미국과 함께 북한을 구석으로 모는 데 동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호주는 북한을 겨냥한 태평양 지역에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반면 말레이시아는 중도적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비교적 북한에 우호적인 아시아 비동맹국가들을 이끌면서 미국과 긴장 관계를 형성한 적도 많다.

한국 정부는 27일 밤늦게까지도 북한이 회담에 참가해 9자회담이 열릴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당초 8자회담은 오후 1시 50분부터 열리게 돼 있었으나 오후 1시 반에 시작되는 북-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북한을 설득할 시간을 주기 위해 회담 시간을 오후 2시 45분으로 연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한국 정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8자회담의 성사 과정 및 구속력=8자회담은 미국의 아이디어로 추진됐다. 중국을 설득하는 역할은 한국이 맡았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26일 중국 리 부장과 회담을 하면서 “6자회담의 동력(動力)을 살리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북한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며 중국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8자회담은 영속적인 ‘대화의 틀’이 아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만들어진 일회성 모임이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구속력이 있는 합의가 이뤄질 수는 없다.

외교 소식통은 “회담에선 북한이 계속 6자회담 참가를 거부할 경우 대북 압박 조치를 취하기로 추상적인 의견을 모으는 것 이상의 결과는 나올 수 없다”고 내다봤다.

쿠알라룸푸르=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北백남순 8자회담에 냉소▼

“그 사람들끼리 잘해 보라고 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고 있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27일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한 백남순 북한 외무상은 이날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압둘라 바다위 말레이시아 총리를 예방한 뒤 남측 기자에게서 8자회담 개최 사실을 전해 듣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 기자에게 “8자 누구?” 하고 묻기도 했다. 한국 미국 일본 등이 며칠 동안 북한이 6자회담이나 북한을 포함한 9자회담에 응하지 않을 경우 8자회담을 추진해 왔던 사실 자체를 잘 모르는 듯했다.

한국 정부 내에선 신장병 등을 심하게 앓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백 외무상이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백 외무상은 바다위 총리 예방을 끝내고 국회의사당 건물 앞에서 북측 당국자들의 부축을 받은 채 승용차를 기다리는 5분여 동안 얼굴을 찡그리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백 외무상은 8자회담 개최 확정 전 6자회담 참여 여부를 묻는 기자에게 “사업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잠자고 (내일) 봅시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철회를 조건으로 미국과 6자회담 재개 여부를 놓고 직접 양자협상을 벌이겠다는 의미로 읽혔다.

백 외무상을 수행한 정성일 북한 외무성 국제기구국 부국장은 “6자회담은 미국 사람들이 (금융)제재를 해제해야 시작할 수 있다. 이것 없이는 그 어떤 경우에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북측의 한 관계자는 “8자회담이 무슨 필요가 있나. 북한과 미국의 문제”라고 말해 북-미 양자협상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반면 남북 양자회담에 대해서는 무게를 두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정 부국장은 남북 회담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나중에 생각해 보자”고 말했다. 반면 반 장관은 이날 “내일쯤 남북이 만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쿠알라룸푸르=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