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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허승호]야성적 충동

입력 | 2006-07-29 03:10:00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서 대금업자 샤일록은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항해 중인 안토니오의 상선 대신 그의 가슴살 1파운드를 담보로 잡는다. 해적이 들끓던 16세기, 무역선이 못 돌아오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뱃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한 동인(動因)은 ‘원금의 수백 배에 이르는 고수익’이었다. 투자가들은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여럿이 돈을 모아 자본금을 마련하곤 했다. 이것이 주식회사의 시작이다.

▷이익 앞에서 투자가들은 초인적 용기를 보여 준다. 이를 조지프 슘페터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라 했고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라고 불렀다. 야성적 충동은 케인스가 경기변동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만들어 낸 말이다. 케인스는 “투자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업가의 직감에 의존해 결정되며 투자의 이 같은 불안정성 때문에 경기가 변동한다”고 설명했다.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기업가의 직감이 바로 야성적 충동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기업들이 야성적 충동을 발휘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 달라”고 주문했다. 한때 무모할 정도로 투자에 적극적이던 한국 기업들의 투자성향이 외환위기 이후 보수적으로 바뀌면서 성장잠재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나온 독려다. 이 총재의 지적대로 번 돈을 재투자하지 않고 그냥 쌓아 두는 기업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상장 제조업체들은 작년 말 현재 회사당 평균 6130억 원을 이익잉여금 형태로 비축하고 있다고 한다.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이 잘 발휘돼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투자하라”고 다그칠 수는 없다. 무모한 투자는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었다. 돈에는 눈이 없지만 ‘이윤의 냄새’를 맡는 자본가의 후각만은 끝내 준다. 고수익 가능성이 높은 투자기회는 줄어드는 반면 규제, 반(反)기업 정서, 전투적 노사관계에다 ‘진정으로 시장경제를 지킬 의지가 있는 정부인가’ 하는 시장의 의문은 계속 커지고 있다.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을 빼앗아 온 사람들이 누구인지, 이 총재는 말할 수 있을까.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