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든 포웰(1857∼1941)은 깜짝 놀랐다. 그의 책 ‘정찰활동 지침서’가 런던 서점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것을 보고서다. 야외에서 정찰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매우 실용적으로 쓴 책이 그렇게 인기를 모을 줄은 몰랐다.
그 책은 포웰이 아프리카에 있을 때 낸 책이었다. 그는 기병대 장교로 아프리카에서 수년을 복무하고 1903년 영국으로 돌아왔다. 누구보다 열렬한 독자층은 교사와 청소년단체 직원이었다. 이들은 청소년이 야외에서 활동하기에 앞서 꼭 읽어야 하는 책으로 ‘정찰활동 지침서’를 꼽았다.
이 얘기를 들은 포웰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청소년 야외활동 단체를 만든다는 발상이었다. 포웰은 19세 때부터 군 복무를 했다. 그는 몸에 밴 단체생활과 엄격한 규율, 신체훈련과 야외 체험 등 군대 경험이 청소년에게도 유익하리라고 생각했다.
1907년 7월 29일 포웰은 보이스카우트 창립을 선언한다. 영국 브라운시 섬에서 소년들을 위한 캠프를 준비하면서다. 사흘 뒤 세계 최초의 보이스카우트 캠프가 개최됐다.
국제 정세의 불안이 계속되던 때 사람들이 ‘소년 군대’에 매혹된 것은 당연했다. 보이스카우트는 빠르게 세를 불려나갔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국가가 앞 다퉈 보이스카우트 지부를 만들었다. 1910년 프랑스 독일 미국 러시아 등의 나라에 보이스카우트가 생겼다. 그해에 포웰의 동생 아그네스가 걸스카우트를 만들었다. 2005년 현재 154개국 2800만 명이 보이스카우트 회원으로 등록됐다.
한국 보이스카우트의 역사도 길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구국 청소년운동을 목적으로 창설된 조선소년군과 조선소년척후대가 전신이다. 1924년 두 단체가 통합됐다가 강제 해산됐고 1946년 사단법인 대한보이스카우트로 재발족했다.
보이스카우트 활동에 군인 정신이 어느 정도 스며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운영 방식이 지나치게 군대와 닮아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래서 군대를 연상시키는 계급 구분이라든지 깃발 행진 같은 군대풍 행사를 없앴다. 자연과 호흡하는 야영생활이나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소년들의 교류 같은, 장점이 될 만한 활동을 더욱 활성화했다.
포웰은 훈련담당교관들에게 소년들과 절대로 성적 접촉을 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고, 단원들에게는 가능한 한 성욕을 절제하라고 가르쳤다. 포웰이 남색(男色) 취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지만 보이스카우트의 인기를 시기한 일부의 억측으로 추정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