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이 북한의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다. 북한도 외교적·경제적 고립을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한 듯 국제사회의 잇따른 대화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수도 평양을 비롯한 북한 전역에 집중호우로 사망하거나 실종된 피해자가 3000여 명에 이른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북한은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 요구조차 거부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5일의 미사일 발사 이후 거의 한 달이 다 되도록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김정일의 은둔=김 위원장은 8일 김일성 주석의 기일에도 나타나지 않더니 6·25 정전기념일 보고대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략적 은둔설’에서부터 와병설까지 다양한 관측이 흘러나온다.
해외공관장 회의를 개최하는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논의 내용은 물론 실제 개최 여부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이 보안 수위를 높이는 ‘준전시 상태’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리자오싱의 외면=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이 27일 쿠알라룸푸르에서 말레이시아 압둘라 바다위 총리 예방행사 때 바로 옆자리에 앉은 백남순 북한 외무상에게 눈길 한번 안 준 것은 두 나라 사이가 예전 같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미사일 발사 이후 미국과 일본이 취하고 있는 대북 제재 움직임이야 예견된 것이었다고 쳐도 6·25전쟁 이후 혈맹(血盟)이던 중국이 등을 돌리면 북한으로선 치명타를 맞게 된다.
중국이 미일 주도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문에 찬성한 것은 물론 중국은행의 북한계좌 동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한을 제외한 10개국 외교장관 회담 개최에 합의한 것 등은 종전의 태도와는 사뭇 달라진 것. 프랑스를 제외한 24개국이 북한과 수교할 정도로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유럽연합(EU)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경제적 고립은 김정일에 위협”=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금융범죄담당 차관은 25일(현지 시간) “아시아와 유럽의 금융기관이 4, 5개월 전부터 북한과의 거래를 끊고 있다”고 말했고,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도 26일 “북한은 국영 중국은행의 조치를 사실상의 제재로 받아들일 것이므로 상당히 좌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미국 상원도 25일 북한과 미사일 핵 등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물자나 기술을 거래하는 기업과 개인을 제재할 수 있는 ‘북한 비확산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고려대 북한학과 남성욱 교수는 “경제적 고립이 장기간 지속되면 내부의 동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에게는 심각한 문제”라며 “특히 그동안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단단히 결속했던 북한 내부의 특권층이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먼저 고개 숙일 가능성 적어=사면초가의 고립 속에서도 북한이 먼저 고개를 숙일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이미 6자회담은 물론 8자회담, 10자회담 등 다양한 형태의 다자회담 제의를 거부한 북한은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 및 미국과의 양자회담 보장이라는 협상카드를 고수하며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 볼 것이라는 것.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김근식 교수는 “북한 정권은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면서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했을 것”이라며 “ARF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 같은 고립을 돌파할 나름의 반전카드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