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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돌이’들의 돌변…잇단 선거패배후 노골적 盧대통령 비판

입력 | 2006-07-29 03:20:00


“우리 ‘탄돌이’들 요즘 고민이 엄청납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역풍으로 엉겁결에 당선된 탄돌이들한테 탄핵 주역(민주당 조순형 전 대표)의 의원직 복귀는 18대 총선을 앞두고 ‘레드카드’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거든요.”

7·26 서울 성북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조 후보가 당선된 다음 날, 기자와 만난 열린우리당 수도권 출신의 한 의원은 탄핵역풍 속에 치러진 17대 총선을 통해 처음 국회의원이 된 열린우리당 ‘탄돌이’들의 고민을 이렇게 전했다. 17대 여당 당선자 152명 중 초선 의원은 무려 108명이나 된다. 6명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2명이 탈당해 지금은 100명만 남았지만 여전히 막강한 세력이다.

탄핵역풍의 덕으로 의원이 됐다고 해서 자칭 타칭 ‘탄돌이’로 불리는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들은 당선 직후에는 노 대통령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2004년 5월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판결로 탄핵사태가 종결되고 난 뒤에도 한동안 이들은 ‘우리 대통령’이란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헌재 판결 직후인 5월 20일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관계자의 청와대 만찬 회동에서는 “대통령은 임기가 5년인데, (탄핵 기각으로) 임기 중에 또 한번 당선되셨다. 축하드린다”는 등의 찬사가 쏟아졌다.

청와대의 그 장면을 보면서 대부분의 ‘탄돌이’들은 “얼마나 감격스러운 장면이냐” “역시 노 대통령은 천운이 있다”고 연방 감탄사를 발했다.

하지만 이들이 변신하고 있다. 5·31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한 후 초선 의원 토론회는 한마디로 대통령과 당 지도부에 대한 집단 성토장이었다. “이렇게 무능한데 재집권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당 지도부 믿고 있다간 큰코다친다”는 등의 얘기가 나왔다.

27일엔 초선 의원 39명이 성명을 내고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의 질책과 요구를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전국 4곳에서 치러진 7·26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전패의 책임을 대통령에게 따졌다. 대통령 탈당에 대해 상당수가 “하든지, 말든지”란 반응을 보였다.

‘누가 더 강하게 대통령을 비판하느냐’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탄돌이’들이 열린우리당에서는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17대 총선 직후 의기양양했던 이들 108명의 탄돌이들은 대통령에겐 깍듯했을지 몰라도 당내의 중진 선배 의원들에게는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임종인 의원은 “선배 의원들이 초선 군기 잡겠다고 하면 물어뜯겠다”며 선배 의원에 대한 노골적인 불신을 보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지도부와 중진들은 이들을 ‘108번뇌’라고 부르며 아예 피해 다녔다. 이부영 전 당의장은 초선 의원들의 행태를 ‘과격 상업주의’라고 평할 정도였다.

총선 때 50%에 이르렀던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석 달 만에 20% 초반대로 추락한 원인도 초선 의원들의 돌출행동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당내의 일반적 평가였다.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권으로 떨어진 지금에 와서 새롭게 변신하는 이들 탄돌이들에 대한 당내의 시선은 썩 곱지 않다.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단어인 ‘진정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한 중진 의원은 초선 의원들의 노 대통령 비난 성명을 보면서 “당의 꼴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데…”라며 “뭐 묻은 개가 뭐 나무라는 식”이라고 코웃음 쳤다.

16대부터 국회에서 보좌관을 지냈고 지금은 젊은 초선 의원 방에 몸담고 있는 A 씨는 “의원은 요즘 뭘 하느냐”고 묻자 “우리 방 탄돌이? 아직은 골프에 정신이 없지. 선거 닥쳐봐야 좀 철이 들려나”라고 냉소했다. 2008년 18대 총선이 닥쳐야 ‘국회의원 되기’의 험난함을 알 것이란 얘기였다.

노 대통령뿐 아니라 ‘탄돌이’들도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그들의 변신 움직임에 대해 국민대 정치대학원 김형준 교수는 “비교적 쉽게 당선된 의원들이 임기 절반이 지나자 자신들의 정치 경력이 단명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생존전략’ 차원의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탄돌이들이 앞으로 얼마나 진정으로 국민에게 다가설지, 그래서 민심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탄돌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彈劾)에 대한 역풍에 힘입어 17대 총선에서 손쉽게 국회의원 배지를 단 열린우리당 초선들을 일컫는 말. ‘탄핵돌이’란 말도 쓰인다. 열린우리당 초선들(현재 100명)은 서로 스스럼없이 이 말을 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