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메모리 반도체 회로도 등 영업비밀을 빼돌려 중국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려던 반도체 회사 전직 임원들과 현직 대학 교수가 검찰과 국가정보원의 공조 수사로 덜미가 잡혔다.
이번 사건 첩보를 최초로 입수했던 국정원 측에 따르면 2003년부터 올해 6월까지 모두 72건의 해외 기술유출 사례를 적발했으며, 이 중 휴대전화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분야가 54건(75%)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부장 이건주)는 28일 영업비밀을 빼돌린 뒤 복제품을 생산, 판매하려 한 혐의(업무상 배임 등)로 비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I사 전 영업이사 박모(42) 씨와 전 기술이사인 황모(47), 김모(45) 씨를 구속기소하고, 이 회사의 사외이사인 H대 곽모(56) 교수를 불구속기소했다.
박 씨는 지난해 5월 황 씨와 김 씨에게 “I사의 모터제어 반도체 제품의 복제품 3가지를 중국 C사에서 싼값으로 몰래 생산해 중국 시장에 팔자”고 제의했다. 이들 제품은 DVD 등 영상음향(AV) 장치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황 씨와 김 씨는 곽 교수에게 이 계획을 알렸고 곽 교수는 이에 동참하기로 했다.
이어 같은 해 6월 황 씨는 반도체 양산에 필요한 ‘조립규격’ 관련 파일들과 반도체 회로도 12장, 김 씨는 다른 반도체 회로도 13장을 각각 빼낸 뒤 퇴사했다.
곽 교수는 두 사람을 자신이 소장으로 있던 H대 내 연구센터의 계약직 조교수로 채용한 뒤 복제품 개발을 독려하고 진행 상황을 보고받았다.
산학협력을 위해 설립된 이 연구센터는 산업자원부에서 연구비를 지원받기도 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이들은 지난해 9월 3개 제품의 복제품 반도체 회로도를 완성한 뒤 올해 3월 중국 C사에서 대량 생산 직전 단계까지 갔으나 국정원의 해외정보망에 기술 유출 사실이 포착됐다.
검찰은 국정원에서 이번 사건의 첩보를 넘겨받아 수사를 벌여 왔다.
피해를 본 I사는 이 기술로 중국에서 복제품이 양산됐다면 피해액이 2350억 원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산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대부분 회사를 그만두면서 영업비밀을 빼돌리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