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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실버가 뜬다]미국 뉴실버, 산업지형도 바꿨다

입력 | 2006-07-29 03:36:00


《올해 2월 2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매디슨스퀘어가든. 이날 이곳에선 ‘아시아의 연인’인 가수 비(23)와 ‘미국 베이비 붐 세대의 연인’인 가수 빌리 조엘(57)의 공연이 동시에 열렸다. 비의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은 아시아계가 주류인 반면 조엘의 공연에는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미국인이 많이 보였다. ‘피아노 맨’으로 유명한 빌리 조엘은 이날 비보다 훨씬 큰 공연장에서 공연했지만 좌석은 매진이었다. ‘기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빌리 조엘은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4월 24일까지 공연을 12차례 했는데, 모든 공연이 매진되었다. 매디슨스퀘어가든 역사상 이런 기록은 없었다.》

○ 공연 시장을 뒤흔든 베이비 붐 세대

요즘 새로 뜨는 가수도 아닌 ‘옛날 가수’ 빌리 조엘이 어떻게 이 같은 신기록을 세울 수 있었을까. 답은 베이비 붐 세대(베이비 부머)였다. 지금까지 공연 시장은 주로 10대나 20대가 주도해 왔다.

그러나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세대로 평가받고 있는 베이비 부머들이 공연 시장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공연을 위해서라면 보통 100달러(약 9만5000원)나 되는 비싼 티켓 구입에도 돈을 아끼지 않는다. 프린스, 롤링스톤스의 공연에 관객이 몰려들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 요즘 미국 공연 시장에서는 10대보다 베이비 부머들의 입김이 더 세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이들은 공연 시장에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했다.

미국에서 베이비 부머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부터 1964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가리킨다. 그 수는 7820만 명에 이른다. 이들 세대의 선두는 올해부터 60대에 들어섰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얼마 전 60세가 됐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다음 달 60세를 맞는다. 그런데 이들 베이비 부머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경제적 문화적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고 해서 미국에서는 ‘신노년층(New Gray)’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한다.

○ “은퇴라는 단어를 은퇴시킨 뉴실버”

뉴욕에서 은행 간부로 일하다 퇴직한 빌 도너휴(57) 씨는 2년 전 뉴저지 주 버긴카운티 자택에 1인 회사를 차렸다. 개인 자영업자들에게 금융과 관련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일이다.

도너휴 씨는 “은행에 다닐 때만큼 바쁜 것은 아니지만 내 스케줄을 직접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베이비 부머들은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한 뒤에도 상당수가 파트타임으로 일하거나 창업을 하는 사례가 많다. 평균수명이 77.4세까지 늘어나면서 50세를 넘긴 뒤 ‘인생 제2막’을 시작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최근 미국에선 2년제 공립대인 커뮤니티칼리지에 베이비 부머가 입학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커뮤니티칼리지는 당초 가정 형편이 어려운 고교 졸업생들을 2년간 교육한 뒤 준(準)학사학위를 주는 게 주 목적. 그런데 커뮤니티칼리지를 ‘인생 제2막’을 위한 교육장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현재 100만 명 정도의 베이비 부머가 커뮤니티칼리지에 등록해 공부하고 있다는 게 커뮤니티칼리지연합회의 추산이다.

○ 미국 산업 지형도를 뒤흔들고 있는 뉴실버

화장품 회사인 레블론은 얼마 전 영화배우 수전 서랜던(59)을 모델로 기용했다. 젊은 모델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화장품 업계에서 60세를 바라보고 있는 모델을 기용한다는 사실 자체가 파격이었다.

이 같은 파격은 레블론이 50세 이상 여성을 위한 브랜드 ‘바이털 레이디언스’를 내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50세 이상 여성을 위한 화장품을 내놓으면서 주름 하나 없는 젊은 모델을 기용하면 소비자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화장품 업계뿐만 아니라 인터넷, 출판, 부동산 시장 등 전 분야에서 베이비 부머를 겨냥한 ‘뉴실버 마케팅’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우선 이들 베이비 부머는 이전 세대보다 ‘부자’다. 이들은 매년 2조1000억 달러를 소비하고 있다. 올해 60세가 된 선두 그룹(1946년생)의 경우 앞으로 7년 뒤 67세가 될 때 평균 재산이 85만9000달러로, 현재 67세 노인들의 평균 재산인 56만 달러에 비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래서 이들을 겨냥한 마케팅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의류업체인 갭도 최근 중년 여성을 위한 전문 브랜드를 내놓았으며, 중매 사이트인 매치닷컴(match.com)도 50세 이상 독신들을 위한 마케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출판업체인 펭귄은 노안으로 시력이 나빠진 베이비 부머 독자들을 겨냥해 글자 크기와 행간을 넓힌 책을 출판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스키 리조트들도 베이비 부머 스키어들을 위해 슬로프 경사를 완만하게 고치고 있다.

심지어 장의업도 개성 있는 장례식을 원하는 베이비 부머들을 겨냥해 엄숙하기보다는 다채로운 이벤트를 결합한 장례식 상품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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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베이비 부머들을 열렬한 팬으로 확보하고 있는 57세의 현역 가수 빌리 조엘(왼쪽)과 50세 이상 여성용 화장품을 내놓은 레블론이 광고 모델로 쓴 영화배우 수전 서랜던은 ‘신노년층(뉴그레이)’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국내 실버산업 年12.9% 성장 전망▼

국내 ‘실버산업’이 2010년부터 10년 동안 연평균 10% 이상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8일 ‘국내 실버산업의 성장성 전망’ 보고서에서 6·25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1950년대 후반∼70년대 초반 출생)가 은퇴자 대열에 대거 합류하는 2010년부터 10년간 실버산업의 성장률이 연평균 12.9%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같은 기간에 산업전체 연평균 성장률은 4.7%에 머물 것으로 예측되지만 요양(6.6%), 의료기기(12.1%), 정보(25.1%), 여가(13.7%), 금융(12.9%), 주택(10.9%) 등 고령친화 부문은 고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예측했다.

또 65세 이상 고령자 비중이 10% 수준에 이르고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2008년은 실버산업이 팽창하는 해로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 직장에서 은퇴하는 연령이 평균 53세인 점을 감안할 때 2008년은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 예상 시점과 맞물린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