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관상동맥중재술 전과 후의 사진들. 막힌 부분(화살표)에서 조영액을 쏘아도 막힌 부분 이후의 관상동맥은 보이지 않다가 관 끝에 철망(스텐트)을 달아 막힌 부분을 뚫어 주자(가운데 사진) 관상동맥이 모두 보인다. 사진 제공 삼성서울병원
퇴직 군인인 이수용(가명·59·강원 철원군 갈말읍) 씨가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도착한 건 18일 오후 11시였다.
저녁 무렵 집에서 갑자기 쓰러진 이 씨는 인근 병원 앰뷸런스를 타고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서울로 달려왔다. 이 씨는 진통제를 맞고서야 겨우 진정됐다.
“갑자기 양쪽 가슴에 통증이 와서 소화불량인 줄 알고 소화제를 먹고 누웠더니 괜찮아지더라고요. 근데 저녁 무렵이 되니까 다시 아프기 시작하는 거예요. 처음엔 양쪽 가슴이 모두 아프다가 왼쪽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아,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될 정도였어요. 산소호흡기가 없었다면 어찌됐을지….”
당직 의사는 일단 심전도 체크에 나섰다. 일단 가슴 통증이 12시간 이상 지속된 것으로 보아 급성심근경색이 의심되었다. 급성심근경색은 심장 내 3가닥으로 뻗은 굵은 동맥(영국식 왕관 모양의 동맥인 관상동맥)이 막혀서 주변 조직이 괴사하는 병이다.
이 씨는 일단 입원 절차를 밟았고 날이 밝자 내과학 권현철 교수팀과 만났다.
“통증은 이번이 처음인가요?”
“10년 전부터 조금씩 아팠어요. 심장 계통으로 유명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 다녀봤지요. 그런데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거예요. 3개월 전부터 갑작스러운 통증이 10초간 왔다 사라지는 게 반복돼 5월에도 한 병원에서 심장초음파, 심전도, 동맥검사까지 다 했어요. 그런데 멀쩡하다는 겁니다.”
권 교수는 이 씨에게 “통증을 느낄 때가 운동할 때인지 쉴 때인지” 물었다.
이 씨는 “운동할 때는 괜찮다가 쉴 때 10초 간격으로 통증이 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고 말했다.
양쪽 가슴 중앙 부분이 답답하거나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오면 협심증이거나 심근경색증일 경우가 많다. 이때 통증이 언제 오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데 운동할 때 온다면 협심증일 가능성이 높고 쉴 때 온다면 심근경색증인 경우가 많다. 혈전 등으로 혈관이 좁아져 생기는 협심증은 심장으로의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생기지만 심근경색은 혈관이 막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더라도 통증이 온다.
이 씨의 경우 혈액검사와 심장초음파 검사에서도 심전도 반응과 달리 급성심근경색이 의심됐다. 더 정확한 진단을 위해 권 교수는 혈관조영술을 하기로 했다. 이 시술은 길고 가느다란 관을 집어넣어 액체를 흘려 넣은 뒤 촬영해서 심근경색인지를 판단하고 시술까지 하는 기법이다.
전신 마취된 이 씨의 손목 대동맥을 통해 가는 철사 줄 굵기의 관이 들어갔다. 1m 길이의 관이 80cm까지 몸에 들어갔다. 이 관을 관상동맥 입구에 걸고 조영액을 밀어넣으면 혈관이 좁아진 부분, 막힌 부분이 모두 관찰된다.
이 씨의 3갈래 관상동맥 중 하나는 입구가 아예 막혀 있었고, 두 개는 중간중간에 좁아진 부분이 있었다.
권 교수는 일단 동맥의 막힌 곳을 뚫어 철망을 이용해 좁아진 혈관을 넓혔다.
시술이 끝나고 20일 저녁 무렵 눈을 뜬 이 씨는 여전히 가슴 부위의 뻐근한 진통을 느꼈지만 다음 날에는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 다음 순서는 심장질환 중 고혈압 협심증에 이어 3위로 많이 발견되는심장부정맥입니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신 분은 e메일(health@donga.com)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전문가 진단
살다 보면, 가끔 지인의 ‘급사’ 소식을 듣는다.
70∼80%는 심장병, 그중에서도 급성심근경색에 의한 것이다. 식생활과 생활습관이 서구화되면서 한국에서도 급성심근경색 환자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급성심근경색은 4가지 위험인자가 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그리고 담배다.
흔히 참고 살라고 하지만 핏대를 올리는 사람이 오히려 덜 위험하다. 지고는 못 사는 경쟁적인 성격이라거나 스트레스를 발산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는 성격은 급성심근경색에 걸릴 위험이 높다. 심근경색은 심장 관련 질병 중에서도 가장 찾아내기 어려운 질병이다.
혈관이 점점 좁아지다가 막혀서 생기는 것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각하게 되는 경우가 60%나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순발력이 최선의 대응이다. 평소 위험인자를 갖고 있는 사람은 심장에 이상이 느껴진다 싶으면 바로 병원을 찾아 정밀검사를 받아야한다.
급성심근경색증은 뇌중풍(뇌졸중), 출혈 등의 합병증을 동반한다. 그중 가장 위험한 건 갑자기 심장이 멈추는 것이다. 그러니 가슴이 10분 이상 아프다면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
권현철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