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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여야, 경제 大聯政을

입력 | 2006-07-31 20:35:00


4년째 낮은 경제성장에 민생이 시들고 있다. 중국이 10% 성장할 때 우리는 겨우 3∼4% 성장한다. 올해 1분기 전국 하위 20% 가구의 평균소득 증가율은 2.4%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니, 실질소득 증가율은 제로에 가깝다. 소득 하위계층일수록 힘겨울 수밖에 없다.

저성장은 주로 내수 위축에 따른 것이다. 아무리 ‘고른 분배’를 외쳐 봐야 나라 안에서 투자, 일자리, 소비가 늘지 않으면 묘수가 없다. 정부는 부자한테 세금 짜내 재분배를 잘할 것처럼 말하지만, 중과세가 상식을 넘어서면 경제가 망가진다. 민간보다 비효율적인 정부, 비생산적인 복지, 세금 떼이기 싫은 돈의 해외 유출, 국내 투자와 소비 위축이 경제 활력을 떨어뜨린다.

우울한 경제 숫자는 어제도 쏟아졌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제조업 경기전망이 1년 만에 최악이다. 경영자총협회가 대기업들을 조사했더니 49%는 하반기에 투자를 줄이고, 18%만 늘리겠다고 했다. 하반기 채용도 줄이겠다는 기업이 44%로, 늘리겠다는 기업(11%)의 4배다. 상반기에 창업한 제조업체는 4070개로 작년 동기보다 26%나 적다. 건설투자도 감소세다. 작년 상반기 84억 달러 흑자였던 경상수지가 올 상반기엔 2억6760만 달러 적자다. 이런 숫자 속에 민생의 위기가 깔려 있다.

위기를 돌파하려면 무엇보다 기업들의 국내 투자가 왕성해져야 하는데, 정부는 투자를 끌어낼 정책은 내놓지 않고 그저 투자하라고 조르기만 한다. 2003년과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기업 리더들을 불러 투자를 많이 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과는 나아진 것이 없다.

현 정권은 오히려 ‘기업하기 좋은 나라, 투자하고 싶은 나라’를 구호로만 외쳤을 뿐, 실제로는 투자에 찬물을 끼얹었다. 노사관계의 불균형을 시정하겠다며 노조의 악습(惡習)을 키웠고, 기업 경영권과 사유재산권에 대한 불안감을 확산시켰다. 더 나아가 시장을 ‘약육강식의 정글’로 몰아붙이며 경제구조를 ‘국가 주도형’으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규제를 강화했다.

이 모두 좌파(左派)정권의 특성이다. 지역균형 발전을 내세우며 수도권 투자를 규제하는 것도 이념의 산물이다. 서울에서 시간거리로 2시간 반경(半徑) 안에 있는 중국 땅에 조건 좋은 산업입지가 수두룩한 현실을 생각할 때 한심한 발상이다.

정권의 성격과 정책 방향이 지난 3년 반의 경제성장 둔화와 잠재력 저하, 그에 따른 민생 위기의 뿌리이다. 이른바 ‘노무현 코드’가 바뀌지 않으면 누가 경제장관이 된들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젊은 관료 시절에는 유능한 시장주의자였던 권오규 씨도 이 정권에서 거듭 중용된 끝에 경제부총리가 되고서는 노 정권의 경제실정(失政)을 만회할 정책전환을 회피하고 있다.

이제는 여야 정치권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투자와 기업발전을 가로막는 규제,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세제(稅制)를 법률 제정 개정을 통해 털어내야 한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이달 21일부터 일주일간 임시국회를 열어 재산세 감면 관련 법안을 심의하기로 했다지만 이렇게 느긋할 여유가 없다. 마침 재정경제부도 내달까지 규제완화책을 내놓겠다고 했으니, 정치권이 주도적으로 규제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 여야 간에 경쟁적 협력을 할 필요가 있다.

어제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 등이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등과 만나 투자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과제에 대해 협의한 것은 일단 긍정적이다. 한나라당,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도 정권의 실정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나라 경제를 살릴 처방 경쟁에 나서야 한다.

정치권은 최소한 올해의 남은 5개월만이라도 ‘정계 개편’이니 ‘대선 틀 짓기’니 하는 정치게임을 접어 두고 민생경제 회생의 법제도적 걸림돌을 제거하는 데 매달려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 주기 바란다. 올해는 여야의 경제 대연정(大聯政)을 통해 노 정부의 실패를 최대한 만회한 뒤 내년에 대선 경쟁을 벌여도 늦지 않다. 지금 정계 개편을 들고 나오는 것은 말인즉 국민을 위해서라지만, 각자 정치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얄팍한 술수일 뿐이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