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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역사 읽기 30선]조선의 뒷골목 풍경

입력 | 2006-08-01 03:02:00


《이상한 일이다. 모두들 쇠고기 먹는 것은 좋아하지만,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인도에서도 모두 소를 잡는 사람을 천시하였다. 또한 먹을 것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가 없으니 농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람인데도 농민의 사회적 지위는 늘 낮다. 이뿐이랴.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왕과 양반처럼 고귀한 사람들 아니면 홍경래나 임꺽정처럼 무언가 큰 사고를 낸 사람들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는 기억하지 않는다. 지금이라고 해서 다를까? 영웅의 열전이 아니라 그런 잊혀진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고 싶다는 욕망이 끓어오른다. ―본문 중에서》

일찍이 에릭 홉스봄은 ‘의적의 사회사’와 ‘원초적 반란’을 통해 사람들이 통념적으로 갖고 있던 도적에 대한 상식에 도전했다. 남의 재물을 훔치는 행위는 물론 비난받아야 하지만, 도적을 낳는 사회적 배경을 살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신분제의 장벽과 관료제의 억압 속에서 상층부의 수탈에 시달리던 민초들은 저항을 꿈꾸고, 누군가 그 저항을 대신해 줄 영웅을 열망한다. 이 같은 열망 때문에 로빈 후드 같은 의적들의 활동이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된다는 것이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에는 홉스봄이 지녔던 문제의식이 엿보인다. 저자는 역사가들이 외면한 도적과 기생, 도박꾼과 건달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삶을 사회사적으로 조명했다.

‘뒷골목’이 지닌 이미지는 어둡고, 더럽고, 칙칙하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뒷골목 사람들과 그들의 삶은 그렇지 않다. 이 책의 인물들은 거개가 그동안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존재들이다. 국사 교과서와 위인전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 인물들의 면면은 어떠한가? 사람들은 대체로 태조 이성계, 세종대왕, 퇴계와 율곡, 이순신, 정약용, 전봉준 등을 우선 떠올릴 것이다.

저자가 조선의 뒷골목에서 불러낸 인물들은 좀 다르다. 조광일, 백광현, 피재길, 류광억, 홍익만, 일지매, 유감동, 어우동, 안광수, 표철주, 이원영 등 영 낯선 이가 대부분이다. 그들이 살았던 삶 또한 독특하다. 병들어 죽어 가는 가난한 민초들을 위해 의술을 바친 의사들, 체제의 부조리에 도둑질로 맞선 의적들, 우연과 불확실성의 세월을 투전판에서 보낸 인물들, 남성 중심 사회의 가식적 엄숙주의를 비웃던 여인들, 양반사회의 질서에 도전하려 한 폭력조직원들, 의리와 호협의 기절을 숭상한 반촌의 남자들이 그들이다.

저자가 불러낸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이 책에서 연상되는 조선은 결코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다. 그야말로 왁자지껄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나라다.

역사가들이 주목하지 않은 ‘마이너리티’들의 삶과 행적을 복원하기 위해 저자가 판 발품 또한 성실하다. 한문학 전문가답게 문집을 비롯한 여러 자료를 꼼꼼히 챙겨 냈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사료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주로 서울 중심, 도시 사람 중심으로만 서술된 것이 그것이다. 당시 조선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한 농민 대중의 일상이 궁금한 독자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생한 삶을 복원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묵직한 질문도 곁들였다. “역사가들이 그려 낸 한국사에서 인간들이 북적대며 살아가는 정경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어딘가 조용하다”라고. 이제 역사가들이 진지하게 저자의 질문에 답할 차례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