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일본 도쿄(東京)의 주택가인 니시오기쿠보(西荻窪)에 한국 전통음식 ‘죽(粥)’ 전문점이 문을 열었다.
첫날에만 죽 200그릇이 팔렸다. 20, 30대 여성들이 줄지어 식당을 찾았다. “죽집이 잘 되겠어?”라는 주변의 예상을 완전히 깼다.
이곳은 현재 하루 매출 20만 엔(약 160만 원)을 올리고 있는 한국의 죽 전문 브랜드 ‘본죽’의 일본 직영3호점. 2002년 무일푼으로 죽 전문점 ‘본죽’을 차린 뒤 4년 만에 죽으로 한류(韓流)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김철호(43) 사장. 문 앞을 가득 메운 손님들을 지켜보는 그의 눈은 자주 젖어든다.
○ 비워야 채워진다
1997년 외환위기 전만 해도 김 사장은 고급 목욕용품 전문 업체의 어엿한 사장이었다.
“외환위기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5년간 꾸려온 회사가 부도나고 아이들 용돈 모아놓은 것까지 빚 갚는 데 털었습니다.”
벼랑 끝에서 그가 생각해 낸 건 외식업.
한 달 수강료 15만 원을 낼 형편이 안 돼 총무 일을 봐주며 요리학원을 다녔다. 밤에는 호떡을 팔며 생계를 꾸려 나갔다. 아끼던 카메라를 전당포에 맡기고 간신히 월세를 냈다.
“당장 끼니 걱정해야 할 처지에 웬 요리학원이냐고 주변에서 수군거렸습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기 위해 투자가 필요했습니다.”
당시 그는 숙대입구역 앞의 명물이었다. 추운 겨울에도 항상 정장 차림을 하고 ‘꿀떡개비’라고 이름 붙인 호떡을 팔았다.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고집했습니다. 반드시 다시 일어서겠다는 다짐이었죠.”
1998년 말 친구와 동업해 음식점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업종 선택과 조리기술, 메뉴 선정, 경영기법 등을 컨설팅하는 학원을 차렸다. 어렵게 재기했지만 친구와 마음이 안 맞아 3년 만에 또 ‘빈털터리’가 됐다.
“그동안 노력해 왔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그때 음식점 사장들의 생각과 고충을 속속들이 알게 됐습니다.”
○ 가맹점 672개, 한달 120억원 매출
2002년 초 머릿속에만 그리고 있던 ‘죽집’을 직접 하기로 결심했다. 봄부터 여름까지 6개월 동안 온 가족이 죽만 먹고 살며 메뉴와 조리법을 개발했다.
그해 가을 서울 대학로 후미진 골목 2층 점포에 ‘본죽’ 1호점을 냈다.
“‘노인이나 환자가 먹는 게 죽’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게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는 젊은 층을 타깃으로 삼았다. 가게 임대료 낼 돈도 모자랐지만 원목 인테리어를 깔고 고급스러운 죽 집만 고집했다. 배달은 사양했다.
참살이(웰빙) 바람이 불면서 가맹점 요청이 밀려들었다.
창업 3년 만에 가맹점 672개를 내고, 지금은 한 달 매출 120억 원을 올리는 대형 프랜차이즈로 우뚝 섰다. 그의 아내는 가맹점 사장 교육과 오픈 점검을 직접 한다. 가맹점을 내는 곳을 돌아다니는 것은 김 사장 몫.
“우리의 죽을 미국의 스타벅스나 일본의 스시처럼 만드는 게 목표예요. 한국 고유의 맛과 문화, 정성에 충실하면 이룰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