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여러분, 앞으로 보게 될 화면에는 끔찍한 장면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국 CNN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카나 지역에 대한 폭격으로 어린이 수십 명이 사망한 사건을 보도하면서 ‘경고방송’을 먼저 내보냈다. 혹시 집에서 어린아이들이 무심코 TV를 보다가 충격을 받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카메라에 잡힌 화면은 끔찍했다. 건물 잔해에 사망한 어린아이의 팔다리가 나와 있는 모습, 비닐로 임시 수습한 시신들…. 눈 뜨고는 보지 못할 장면이었다.
헤즈볼라의 선제공격과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시작된 레바논 사태가 3주째로 접어들고 있다. 이스라엘은 반격을 통해 ‘테러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 줘 앞으로 테러 가능성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집권 1기의 키워드였던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를 떠올리게 하는 전략이다.
미국도 이스라엘의 전략을 용인하고 있는 분위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전면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미국은 “헤즈볼라의 무장해제가 선결조건”이라며 반대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판 ‘충격과 공포’는 성공할 수 있을까? 레바논 사태 이후 중동의 질서는 이스라엘에 결코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헤즈볼라는 아랍권에서 반(反)이스라엘 투쟁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헤즈볼라로선 이번 공격에서 살아남기만 해도 ‘승리’인 셈이다.
반면 이스라엘은 ‘패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주택가에 침투해 있는 헤즈볼라 네트워크를 와해시키기는 결코 쉽지 않다. 무리한 작전으로 민간인 피해만 키웠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도 아랍지역에서 반미(反美) 감정만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사이 애꿎게 레바논 민간인들만 희생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벌써 레바논에선 무고한 민간인 사망자가 400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사망자 중 상당수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어린이들이다. 전쟁을 ‘가장 끔찍한 인간소외 현상’이라고 정의한 어느 철학자의 말이 새삼 머릿속에 떠오른다.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