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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황호택]대학에서 온 e메일

입력 | 2006-08-03 03:01:00


서울 어느 대학에서 30년 가까이 봉직한 교수가 본보의 지인(知人)에게 e메일을 보냈다. 혼자 읽기 아까운 글이라 돌려 보았다. “같은 논문을 두 번씩 다른 데 게재해 실적을 부풀리고 제자 학위논문 내용을 자기 논문으로 꾸미는 부도덕한 교수가 있다는 사실은 의식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학계의 공인된 관행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은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발 뻗고 잠 못 자는 것으로 생각했지요.”

▷김병준 씨는 논문 표절 또는 중복 활용에 대해 “(언론이 말하는) 이런 기준을 적용한다면 대학교수는 아무도 교육부총리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메일에 “그따위 사기(詐欺)는 상상도 해 보지 못한 수많은 교수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정말 고발감”이라고 썼다. “사과를 하지 않았느냐고 호통을 치는데, 사과할 만한 과실이 있다면 속죄(贖罪) 행위가 있어야지요. 조교와 사무원이 한 일이라 책임이 없다고 한다면 ‘책임자’가 왜 있는 것입니까. 얼마나 비겁한 이야기입니까.”

▷그는 “김병준 식이라면 사회과학이 학문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제자의 논문 내용을 도적질하는 것을 파산 선언과 같이 생각하는 학자들에게 너무 어이없고 딴 세계 같은 이야기”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 교수는 대학 사회에서는 김 씨를 두고 ‘고강도 철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며 “정말 뻔뻔스럽다”고 썼다.

▷1억 원 용역을 준 구청장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한 것에 대해 김 씨는 그제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용역은 성북구청장이 준 것이 아니라 성북구청이 주었다”고 답변했다. 그런 논리라면 박사학위는 대학 이름으로 주니까 지도교수가 해명할 필요도 없다. 김 씨의 궤변을 제대로 따지지 못한 채 들러리를 선 여야 국회의원들은 더 한심하다. 김 씨는 마치 ‘오보의 희생자’인 것처럼 둘러댔다. 하지만 e메일을 보낸 교수처럼 대학사회의 명철한 지성들은 김 씨의 표리(表裏)를 꿰뚫고 있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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