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은 한마디로 서구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 체제와 제도, 문물, 문화 전반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그 핵심엔 학문 체계의 서구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이는 서구 중심의 학문 체계에 주변부로 편입되었음을 뜻한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학제가 변경되어 당시까지 학문과 교육의 중심에 있던 성균관의 위상이 추락하고 기술과 어학이 부상하자 당대의 지식인들은 ‘신발과 모자가 바뀌었다’고 비판하였다.
그 이후 우리는 시대에 뒤졌다고 생각한 우리의 전통을 스스로 폐기 처분해 가며 1세기 이상 서양 배우기에 골몰하였다. 서양에서 들어온 현대 축구를 배워 월드컵에서 4강 진입의 꿈까지 이루었다. 국민이 이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주변부에서의 탈출이라는 성취감에 있지 않나 싶다. 운동 외에도 음악, 영화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이들로 하여 우리는 지난 세월의 변방 의식을 깜빡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유독 학문 분야에선 아직도 심한 변방 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대회를 열어 놓고도 주인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복도에 옹기종기 모여 손님처럼 굴었다든가, 국제학회에 참석하여 말석에서 들러리를 서고 돌아와 목에 힘주다가 그 실상을 목격한 이에 의해 망신한 일은 지난날의 일이라 치자.
많은 비용을 들여 세계의 석학을 초청해서 난해하고 현학적인 강의를 듣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물론 개중에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주는 이도 있고, 거기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일회용 행사로 끝나고 얻어듣고 배우는 단순한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최근 우리 학계에도 이런 현상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세계 학계에 진입하여 서구학자 중심의 학회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는 일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 한 예로 세계지리학연합회(IGU)의 사무총장에 당선된 서울대 지리학과 유우익 교수를 들 수 있다.
이 학회는 150여 개국 지리학회가 모여 구성된 연합체로 4년에 한 번씩 돌아가며 세계지리학대회를 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에 열렸다. 나는 그때 열린 지도 전시회에 규장각에 있던 고지도를 협찬한 인연으로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때 대회 사무총장으로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끈 유 교수는 부회장이 되었고 일본 후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지금은 사무총장에 당선되어 내년부터 임무를 수행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어 임무 수행이 어렵다는 것이다. 우선 강의 부담이다. 이런 경우 대학원 강의만 하도록 하는 등 예외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규정이 없다. 또 학기 중 해외 출장의 횟수를 제한하는 규정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고 어떤 경우에는 임무 수행에 차질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이미 대학 당국에 제기했는데 “규정이 없어서 곤란하다”는 대답이었단다.
1871년 탄생한 이 학회는 제국주의 시대에 영토 문제에 개입하여 막강한 힘을 행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지리학에는 국적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지리학에는 국경이 있다는 말이다. 독도나 동해의 표기 문제 등 민감한 현안도 외교적 노력 이전에 학술적 연구를 통한 이론의 힘이 보태지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다.
외교도 지난날의 정치 군사적 외교를 벗어나 통상외교로, 이제는 문화 학술 외교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추세다. 이런 환경 변화는 우리에게 희망적이다. 계속 서구 중심의 세계관 속에서 웅크리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거기에서 뛰쳐나올 것인가.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규정은 만들면 된다. 지금까지 이런 규정이 없었다면 이는 우리가 서구 학문의 주변부라는 변방 의식을 아직도 그대로 갖고 있다는 징표다. 이제 서구 중심의 학문 세계에도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거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시점에 우리 스스로 규정과 제도 타령이나 하며 게을리 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옥자 서울대 교수·국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