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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86년 독립기념관 화재

입력 | 2006-08-04 03:02:00


1986년 8월 충남 천안시 목천읍 흑성산 자락. 오룡쟁주(五龍爭珠)의 명당인 이곳에선 민족자존의 성전인 독립기념관을 짓는 대역사가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다. 121만 평의 터 한가운데에 우뚝 선 ‘겨레의 집’은 길이 126m, 폭 67m, 높이 45m의 단층 구조였다. 4만1316장의 구리기와를 얹은 맞배지붕 면적만 3000평이나 됐다. 겨레의 웅혼한 기상을 나타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15일이면 대통령이 참석하는 광복절 기념식 겸 개관식이 이곳 겨레의 집에서 성대히 치러질 참이었다. 밤늦게까지 마무리 작업이 이어졌다. 역사적인 날을 열하루 앞둔 4일에도 그랬다. 그런데 이날 오후 9시 50분 이 성스러운 곳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치욕의 불꽃이었다. 불꽃은 삽시간에 지붕을 삼켰다. 붉게 빛나던 구리기와가 속절없이 녹아 내렸다. 웅대한 겨레의 집만큼이나 치솟던 겨레의 자존심도 함께 녹아 내렸다.

독립기념관이 어떤 곳인가. 198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분노한 온 국민이 벽돌 한 장 쌓는 심정으로 모은 정성의 총화였다.

신문팔이 소년은 신문 대금을, 강원도의 산골 중학생들은 약초를 캐서 모은 돈을, 독립유공자 유족은 몇 달치 연금을 맡겼다. 8월 31일부터 연말까지 단 넉 달 동안 353억6464만2300원이 모였다. 모금기간이 끝났어도 성금 행렬은 이어졌다. 경제인 성금에다 기념배지 판매이익금과 이자를 합쳐 1986년 5월까지 모두 691억9158만2490원이 모였다. 1년간의 토목공사에 이어 1984년 8월 15일엔 건축물 기공식이 열렸다. 3년 뒤엔 이곳이 겨레의 성전이 될 터였다.

여기에 정권이 끼어들었다. 1986년 열릴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이전에 준공하기로 한 것이다. 공기(工期)를 무려 1년이나 앞당겼다. 치욕은 여기서 비롯됐다.

시간에 쫓긴 시공업체는 6월 공사장에서 심부름을 하던 한 청년에게 전선 연결 작업을 시켰다. 도면에 그려진 대로 선을 이어 가던 ‘무자격 전공’이 그만 380V 선에 110V 선을 연결하고 말았다. 40여 일이 흘렀고 전기 설비에 대한 검사도 받지 않은 채 ‘불법’으로 조명등을 켰다. 불꽃이 튀었고 가연성 자재로 뒤덮인 천장으로 번졌다. 부랴부랴 끌어 온 소화전의 호스에서 나온 물줄기는 겨우 30cm를 뻗어 나갈 뿐이었다. 그나마 1분을 넘기지 못했다. 총체적 부실이었다.

정권의 과시욕이 온 국민의 가슴을 까맣게 태운 사고였다. 결국 개관은 ‘처음 계획대로’ 1987년 8월 15일로 미뤄졌다.

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