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의 진보적 자유주의/이근식 지음/286쪽·1만2000원·기파랑
◇엘리노어 마르크스/스즈키 주시치 지음/464쪽·1만8500원·프로메테우스
여기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재위 시의 전성기 영국에서 살았던 2명의 진보적 인물이 있다. 존 스튜어트 밀(1806∼1873)과 엘리노어 마르크스(1855∼1898). 이들은 매우 닮았으면서도 대조적인 삶을 살았다.
두 사람은 유명한 아버지를 뒀다.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존의 아버지 제임스 밀은 공리주의를 제창한 벤담, 노동가치설을 창시한 리카도와 교유한 당대 최고의 자유주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였다. 엘리노어의 아버지 카를 마르크스는 설명이 필요 없는 사회주의 대표이론가였다. 이들은 그런 아버지로부터 가장 사랑받은 자녀로 조기교육의 성공작이었다. 존은 일체의 정규교육 없이 아버지로부터 영재교육을 받아 16세의 나이에 40세의 지성을 지녔다는 말을 들었다. 엘리노어 역시 4세 때 셰익스피어 연극대사를 완벽하게 외우고 9세 때 미국 남북전쟁을 논할 정도로 총명해 천재로 유명했던 아버지로부터 “엘리노어, 너는 바로 나다”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의 통념에 반하는 결혼을 한 점도 닮았다. 존은 25세의 나이에 부유한 기업가의 아내였던 유부녀 해리엇 테일러(당시 23세)와 사랑에 빠져 20여 년 밀애를 키워 오다 테일러의 남편이 죽은 뒤 2년을 더 기다려 결혼했다. 엘리노어는 영국 사회주의운동 지도자였던 유부남 에드워드 에이블링과 14년간 비공식적 결혼생활을 하며 자유연애사상을 실천으로 옮겼다.
무엇보다 둘의 공통점은 ‘따뜻한 가슴’이라고 할 수 있다. 존은 아버지의 고전적 자유주의가 간과한 현실, 즉 빈부격차의 악화와 대량실업의 양산이라는 ‘시장의 실패’가 야기한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완하기 위해 노동조합의 인정, 교육제도와 복지제도의 확충을 주장했다. 또한 여성의 참정권 확대 등을 적극적으로 주창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누구보다 강조한 사상가였다.
엘리노어는 마르크스와 본처인 예나 사이에서 태어난 세 딸 중 막내로 아버지의 사상을 가장 투철하게 이어받은 적통으로 인정받았다. 그녀는 영국 사회주의운동의 수호천사나 다름없었다. 힘과 주먹만이 노동자를 해방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윌 도운 같은 과격한 노동운동가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 최고의 마르크스 이론가로 탄생시켰다. 거리의 아이들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고 동물에게도 생명의 존엄이 있다고 역설한 선구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투철한 사회주의 투사면서 “적이 용서를 구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 그의 상처를 치료했다”는 평을 들을 만큼 기독교적 이상을 구현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존이 ‘이성의 성자’로 기억되는 반면 엘리노어는 ‘사회주의사상 최악의 비운녀’로 기억되는 까닭은 그들의 엇갈린 사랑에 있었다. 존은 자서전에서 아내 해리엇을 의지력과 지성 면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당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극찬했다. 그는 또 해리엇 사후 발표된 자신의 대표작 ‘자유론’ ‘경제학원론’ ‘공리주의론’이 해리엇과 토론을 거쳐 집필됐기 때문에 공저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반면 엘리노어는 에이블링에게 철저히 이용당하다 결국 그가 중혼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43세의 나이에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엘리노어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사회주의운동에 헌신했으나 에이블링은 자신의 퇴폐적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그녀를 활용했을 뿐이었다. 훗날 엘리노어의 음독자살조차 에이블링이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 교묘히 조종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 유럽의 사회주의운동가들은 치를 떨며 분노했으나 마르크스 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이를 비밀로 묻어 버렸다.
7인의 자유주의 사상가를 차례로 소개하고 있는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의 ‘존 스튜어트 밀의 진보적 자유주의’는 존 롤스와 함께 가장 진보적 자유주의자로 꼽히는 존 스튜어트 밀의 생애보다는 그 치열한 내면을 추적했다. 반면 1967년 저자의 옥스퍼드대 박사학위 논문이 단행본으로 간행된 뒤 영국 BBC방송에서 2차례나 극화됐던 ‘엘리노어 마르크스’는 19세기 서구 사회주의 운동가들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외상을 남긴 엘리노어의 비극적 생애에 초점을 맞췄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