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아한 유니폼을 입고 하늘과 공항을 누비는 승무원은 항공사의 꽃으로 불린다. 승무원은 여행길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하며 승객에게 한 국가와 도시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민간 외교사절단이라고도 불린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승무원 생활을 한 지 어언 17년. 어느새 나는 17명의 팀원을 이끄는 국제선 팀장이 되었다. 처음엔 패기와 열정만으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승무원 생활을 하면 할수록 느끼게 되는 것이 경험의 중요성이다. 다년간의 비행 경험은 승객의 얼굴과 상황만으로도 그들의 마음과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마치 독심술의 대가가 된 기분이라고나 할까?
비행기는 기종에 따라 다르지만 장거리 노선의 경우 300명에서 400명의 승객을 모시고 10시간이 넘게 날아가는데 종종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 기내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한다거나 과음으로 난동을 피우는 승객 때문에 다른 승객의 여행을 망치는 경우, 혹은 갑작스럽게 폐소공포증을 호소하는 승객 등 다양한 상황을 많이 접하게 된다. 지난해 몸이 아픈 소녀를 위해 ‘아름다운 회항’을 한 경우는 세간에 많이 알려진 좋은 예이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나는 비행기 내에서 해결사가 되어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려고 최선을 다한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강한 정신과 근성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비행기를 타면서 느끼는 다양한 경험에 내가 일하는 서비스 분야에 대한 학문적 지식을 더한다면 더욱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6년 전 겁 없이 학문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불규칙한 스케줄에 따른 근무를 하는 데다 시간상의 제약을 많이 받다 보니 남들보다 공부하기가 어려운 편이다. 내 경우에도 승무원 생활과 석박사 과정을 병행하는 지난 6년간 휴가를 온전히 학업에 투자해야만 했다. 유니폼을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학교와 공항을 오가기 일쑤였다.
그러나 비행근무를 하면서 겪는 힘든 일에 비하면 공부하는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힘든 과정을 견디다 보니 공부는 힘들다기보다는 내 삶의 또 다른 활력소가 되었다. 힘에 부치긴 했지만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한 결과 부끄럽지만 여승무원 최초로 박사학위 취득이라는 영예를 안게 됐다.
최근에는 자기계발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많은 후배가 나를 찾아와 조언을 구하곤 한다. 경험을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있어 뼈를 깎는 노력이나 고통이 없이는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항상 먼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의욕과 열의가 있는지를 후배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환경에 지배되지 말고 환경을 지배하라고 충고한다.
승무원이라는 외형적 이미지에 안주하지 않고,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하는 승무원이 많아진다는 사실은 앞으로 승무원의 이미지 개선뿐 아니라 객실 서비스의 수준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향정 대한항공 객실승무본부 선임사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