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에 대한 인사권은 대통령의 중요한 권한이다. 효율적 국정 운영을 위해 대통령은 적임자라고 판단되는 사람을 기용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 언론도 대개는 그 권한을 존중해서 새 인물이 임명되면 ‘외견상 강직하나 가까이 해 보면 온화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인물평을 좋게 써 준다. 그런 ‘관행’이 있는 터라 임명한 지 보름도 안 된 김병준 교육부총리를 여론에 밀려 경질해야 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자존심이 크게 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무위원의 임면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것처럼 그것이 잘못 행사됐을 때 이를 비판하거나 비판적 여론을 전하는 것 역시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자 책임이다. 그가 교육부총리로서 적격자가 아니라는 점은 사실 언론이 제기한 문제점들에서보다 김 씨가 그 후 비판 여론에 대해 보인 반응을 통해 더 잘 입증됐다. 그래서 이번 일의 경우 의혹을 제기한 언론은 경질의 단서만 제공했다고 하는 편이 옳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은 화가 날 때도 감정을 억제하고 정제된 말과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국회에서 그가 보여 준 표정과 말투는 신사답지 못했고 일국의 ‘재상’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노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국회에 가서 싸우라고 독려할 때도 국민은 장관들이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에게 “그럼 북한의 목을 조르라는 말씀입니까”라는 식으로 따지라던 대통령의 주문을 충직하게 흉내 내 그가 ‘박사학위를 팔았다면 얼마에 팔았는지 계산서를 달라’고 답변한 것은 비교육적 모습이었다.
같은 논문을 제목만 바꿔 여기저기 내는 것이 대학가의 관행이라는 그의 주장은 안타깝게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문제에 있어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은 대략 세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첫째는 중복 게재가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해 죄책감 없이 적극적으로 논문 편수를 쌓아 올리는 부류다.(대학들도 잘못된 경쟁의식 때문에 제재는커녕 이를 오히려 환영하고 권장한다). 둘째는 떳떳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 필요성 때문에 그런 짓을 하는 부류로서 많은 교수가 여기에 속하는 것 같다. 그리고 세 번째는 소수지만 대학가의 이런 풍토와, 대학을 그렇게 만든 우리 사회를 개탄하는 교수들이다.
김 씨의 발언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첫째 부류인 세속적 교수 군에 속하는 것 같다. 이런 교수들은 연구도 열심히 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지 않은 관행도 많이 만든 셈이다. 교육부총리라면 비록 그것이 크게 나쁜 짓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면구스럽게는 생각하고 ‘개선해야 할 좋지 않은 관행’이라고 했어야 옳다. 이미 대학가에서는 그가 속해 있던 대학의 이름을 따서 ‘OO대학 식 관행’이라고 조롱하고 있으니 김 씨에 의해 명예를 훼손당한 그 대학의 교수나 학생들의 심정은 어떨까.
“이런 식으로 따지면 앞으로 교수 가운데 교육부 장관 할 사람이 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엉뚱했다. 가령 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인사가 과거 홍등가를 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면 ‘젊은 시절 한때의 부끄러운 기억’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이 정당한 기준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한민국에 외도 한두 번 안 해 본 놈 있으면 나와 보라. 뭐가 잘못이냐’고 대차게 나온다면 그는 공직자로서 분별력이 마비된 사람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그의 그릇 크기였다. 회사든 공직사회든 심지어 하찮은 조폭 조직에서도 바람직한 상사는 부하들에게 소신껏 일하게 하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져 주는 사람이다. 일이 잘못됐을 때 발을 빼고 아랫사람 탓하는 비겁한 상사는 존경받지 못한다. 그는 이번 논문 시비에서 여러 차례 “조교 등 실무자들의 실수였다”며 잘못된 부분을 아랫사람 몫으로 돌렸다. 그런 사람이 교육부총리가 됐을 때 교육부 관리들이 그를 믿고 말 많은 교육정책을 소신껏 추진할 수 있었을까. 국회에서 정책 오류를 추궁당할 때마다 서기관이나 사무관들은 속죄양이 됐을 게 뻔하다.
그런 차원에서 노 대통령이 일주일 가까이 ‘몽니’를 부리다가 뒤늦게나마 어제 그의 사표를 수리한 것은 이 나라 교육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다. 노 대통령은 새 교육부총리를 찾을 때 부디 ‘교육적’인 사람을 발굴함으로써 자존심 상하는 일을 반복하지 않기 바란다.
이규민 大記者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