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이 7일 서울 종로 스폰지하우스에서 한국 영화계의 현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7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극장에서 열린 김기덕 감독의 신작 ‘시간’의 시사회. 김 감독은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나왔다. ‘아는 사람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할 수가 없어서’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더는 한국에서 내 영화를 개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지난해부터 국내 언론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김 감독은 이날 작정한 듯 그동안의 서운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재작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에게 감독상을 안겨 준 ‘빈집’은 9만5000명, 작년 단관 개봉한 ‘활’은 겨우 1400명 정도가 관람했다. 예술영화를 배급하는 영화사 ‘스폰지’가 아니었다면, ‘시간’은 해외에서 발매된 DVD를 통해서만 볼 수 있을 뻔했다.
김 감독의 더 깊은 마음을 알고 싶었지만 그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작업해 온 강영구 PD는 “흥행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드는 감독은 아니지만 누가 영화를 혼자 묵혀 두려고 만들겠느냐”며 “한국 영화계에 대한 전반적인 서운함을 표시한 것”이라고 전했다.
같은 날, ‘괴물’로 초대박 행진을 하고 있는 봉준호 감독은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괴물’이 1600여 개 스크린 중 600개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한국만의 독특한 상황”이라며 “다양한 소수 취향의 영화를 보호할 수 있는 ‘마이너리티 쿼터’ 같은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작가주의 예술영화 감독이든, 흥행 감독이든 작은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어 가는 현실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배급사나 극장 탓만 할 수는 없다. 극장은 돈을 벌기 위해 필름을 돌린다. 뻔히 관객이 안 들 것을 알면서도 예술영화 발전을 위해 상영관을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국내 영화계가 스크린 쿼터 축소 저지를 위해 내세운 명분 중 하나는 막대한 물량 공세를 퍼붓는 할리우드 영화에 맞서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술영화 입장에서는 국내 거대 배급사나 할리우드나 똑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마이너리그 없는 메이저리그는 없다. 봉 감독의 말처럼 작은 영화도 최소한의 상영 기회를 주는 보호 장치를 만들어 ‘우리 안의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해야 하지 않을까.
김 감독은 ‘시간’이 20만 명만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체코 카를로비바리 영화제 개막작으로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과연 그의 바람은 이루어질까.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